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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강 대결은 한·중 모두에 손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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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

지난 8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의 발언 이후 한·중은 강대강 대결 양상이다.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중국 측이 싱 대사를 소환함으로써 사태 수습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듯하다. 이는 이 사태를 양국 간의 본질적인 외교 노선 차이라기보다 싱 대사의 일탈적 행태로 규정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관리하려는 의중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 측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은 이제 중국과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갈등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 미·중 간 전략적 협력의 시기에 친미 노선은 한·중 간 마찰의 사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 시기 친미 노선은 필연적으로 중국·러시아와의 갈등 강화라는 비용을 초래한다. 싱 대사의 발언은 개인적 일탈이나 친강 외교부장의 전랑외교 차원이 아니라, 중국 최고 지도부 차원의 대(對)한국 정책의 변화를 전달한 것이다.

싱하이밍 중국 대사 발언 파문
미·중 경쟁 속 한·중 이익 충돌
소모적 비용 줄이는 협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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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은 한국에 대해 관찰과 관리를 기조로 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행보 등을 통해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미국으로 편향되면서 중국에 비우호적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이 천명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원칙에 따라 대한국 정책을 ‘억제와 압박’ 위주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과의 갈등 본격화는 중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국에 대한 지나친 압박은 추가적 한·미·일 협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반도체 역량을 보유한 국가로, 전면적인 경제적 충돌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중국은 윤 정부가 미·일의 대중 입장에 거침없이 동조하면서, 대만 문제 같은 핵심 이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향후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대만을 봉쇄하기 위해 취했던 정책을 하나씩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군사적으로 한국을 포위할 것이다. 러시아와 더불어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나들고, 서해와 동해에서 아직 획정되지 않은 해양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외교적으로는 한국에 비우호적 조치를 강화할 것이다. 국제적으로 한국이 주도하는 정책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한국을 배제·고립(困韓)시키려 할 것이다. 북·중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 도발에 대해 재제를 강화하려는 한국 정부의 어떠한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또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전면적인 경제 전쟁은 중국의 옵션이 아니지만, 다양한 공식·비공식 수단을 활용하여 경제적으로 한국에 불이익을 주려 할 것이다(窮韓). 중국의 경제정책은 이미 한국과 탈동조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윤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균형외교나 헤징외교 대신 명백하게 한미동맹 강화론의 입장에 서 있다. 이전 정부가 추구했던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친미라는 전략적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더는 전략적 모호성을 추구할 공간이 없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다만 또 하나의 축이었던 중국·러시아 같은 주변 강대국과 적대 관계로 들어서는 것은 과유불급이라는 원칙은 무너지고 있다.

한·중 관계가 긴밀했던 만큼 한·중 갈등은 서로에게 큰 비용을 치르게 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양국의 이익과 전략적 비전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필연이다. 한·중은 이 차이들이 가져올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미래 협력의 이익을 쌓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은 갈등을 확대하기보다 강대강 대결을 지양하고 상황을 안정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간 접촉이 부담스럽다면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여를 계기로 물밑 대화를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국은 한국에서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여를 결정해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이 더는 청·조선 시기의 위계적인 것이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번영하면서, 국가 간 상호평등성에 기초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과 같은 주변 국가와 평화를 유지하지 못하고, 압박외교로 전환한 중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주변 국가들과 경제적 협력의 기반을 닦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미래의 지역 안정과 평화에 대단히 긴요하다. 한·중 모두의 자제와 지혜가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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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