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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범죄도시3’ 나 홀로 선전…무너진 한국영화

중앙일보

입력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꼭 1년 만에 같은 일을 또 하게 됐다. 마동석 제작·주연 영화 ‘범죄도시’의 흥행 의미를 짚는 일이다. 시리즈 세 번째 영화인 ‘범죄도시3’가 개봉 2주 만인 13일 관객 800만 명을 넘어섰다. 개봉 18일차에 800만 관객을 돌파한 ‘범죄도시2’보다 나흘 빠른 기록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전 마지막 천만 한국영화인 ‘기생충’(17일차)보다도 빠르다. 이 기세라면 무난히 천만 돌파까지 가리란 전망이다. 하지만 1년 전의 희망과 흥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봉 2주 만에 관객 800만 돌파
5월 한국영화 점유율은 18.2%
1년 전 “코로나 위기 극복” 무색
OTT 약진만 탓하고 있을 건가

올 상반기 외국영화는 비교적 선전

 ‘범죄도시2’가 천만 영화에 합류한 건 지난해 6월 11일이었다. 영화계 전체가 잔칫집 같았다. 제작사 대표는 “경쟁사에서 이렇게 축하 인사를 많이 받은 건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했고, 언론도 앞다퉈 ‘코로나 극복 신호탄’ ‘극장가 부활’ 등의 분석 기사를 썼다. 영화관 내 팝콘 취식이 허용되자마자 탄생한 천만영화였다. 코로나19가 무서워 극장을 떠났던 관객들이 팬데믹 후 다시 돌아오리란 기대가 확신이 됐다.

 당시 취재수첩을 들여다보니 “흥행 복원력이 엄청나다. 시즌 내 천만영화가 한두 편 더 나올 수 있겠다”(김형석 영화평론가)는 장밋빛 전망에 “앞으로 메이저 영화들이 쏟아져나오면 독립영화 등 다양성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잃을까 걱정”(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이라는 때이른 우려까지, 천만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나왔던 2019년으로 금세 돌아갈 것 같은 낙관적 분위기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지난해 여름 대목을 노려 개봉한 ‘외계+인’(153만명), ‘비상선언’(205만명) 등 대작 영화들이 기대 이하 성적을 거둔 건 시작에 불과했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성적표는 더욱 처참한 수준이다. 천만영화는커녕 지난달 31일 ‘범죄도시3’가 개봉할 때까지 관객 100만을 넘긴 영화도 ‘교섭’(172만명)과 ‘드림’(112만명)뿐이다. 손익분기점은 단 한 편도 넘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영화의 매출액 점유율은 29.2%에 불과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분기 점유율(64%)의 절반도 안됐다. 매출액은 798억원으로 2019년 1분기 2994억원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올 1분기 외국영화 매출액은 1933억원으로 같은 기간 2019년 매출액(1683억원)을 이미 넘어섰다. 지난 연말 개봉한 ‘아바타: 물의 길’은 올 1월 개봉 4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넘겼다. 영화 시장의 위기라기보다 한국영화의 위기인 셈이다. 코로나19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바뀐 영화 소비 행태, 훌쩍 뛴 티켓값 등에만 침체 핑계를 대기도 어렵게 됐다.

 사정은 계속 악화일로다. 지난달 한국영화의 매출액 점유율은 18.2%까지 떨어졌다. 그사이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은 553만 관객을 모으며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도시3’는 막중한 부담감을 안고 개봉했다. ‘범죄도시3’마저 실패하면 이제 방법이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 다행히 2편에 버금가는 흥행 질주로 한국영화계의 숨구멍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범죄도시3’의 성공 의미를 ▶‘마동석’이란 브랜드의 가치 ▶강력한 흥행 전략으로서의 프랜차이즈 세계관 ▶확실한 재미를 원하는 극장 관객의 기호 등을 확인한 데서 찾는다. “영화산업 시스템이 육성한 성공 사례라기보다 ‘예외적 천재’들이 만든 ‘예외적 성공’”(이상용 영화평론가)이란 시각도 있다. 어찌 됐든 ‘범죄도시3’의 나홀로 성공 한방에 한국영화의 암흑기가 끝날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신규 투자 중단 등 생태계 마비

 현 위기를 타개할 동력은 ‘볼만한 영화’의 지속적인 공급밖에 없다. 최근 연이어 언론 인터뷰를 한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개봉을 못 한 채 창고에 쌓여있는 영화가 90여 편에 이른다. 제작·배급사조차 흥행에 자신 없다는 얘기니, 팬데믹 직전 한국영화 절정기의 제작 결정이 잘못됐다는 방증이다. 신규 투자가 중단되고 영화 생태계가 마비되는 현 상황에 대해 영화계 내부의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영화의 성장을 이끈 건 창조적 도전정신이었다. 미쟝센단편영화제·인디다큐페스티벌 등 20년 가까이 신인감독 등용문 역할을 했던 영화제들이 팬데믹 기간 사라진 것도 악재다. 설상가상 27년 역사의 국내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도 운영위원장 인사와 관련한 내홍에 휩싸여 자중지란에 빠져 있다. 홀로 축포를 터뜨리게 된 ‘범죄도시3’의 심폐소생술로는 해결 안 될 난국이다.

글=이지영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