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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쫓는 '2인자'들의 역습…삼성·AMD 동맹 탄생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리사 수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서 새로운 인공지능(AI) 칩 'MI300X'을 공개하고 있다. AMD

리사 수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13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 호텔에서 새로운 인공지능(AI) 칩 'MI300X'을 공개하고 있다. AMD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기업 엔비디아는 종가 기준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275조원)를 돌파하며 역사상 7번째로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 기업이 됐다.

엔비디아의 주가는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연초 대비 2배 가까이 치솟았다.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며 독점 시대를 열었다. 원래 게임용 칩으로 쓰이던 GPU는 최근 대규모 인공지능 언어모델을 훈련하는 데 필수적인 칩으로 떠올랐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AI가 등장한 뒤 AI 개발에 필수적인 GPU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서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 H100 역시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엔비디아가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했던 같은 날, 한쪽에선 또 다른 반도체 기업이 신제품을 공개했다. ‘만년 2인자’로 불리는 AMD의 신형 GPU였다. AMD는 이날 공개한 생성형 AI 가속기 ‘인스팅트 MI300X’를 내놓으며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GPU”라고 소개했다.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겨냥한 명백한 도전장이었다.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에서 리사 수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에서 리사 수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개막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인텔·엔비디아와 경쟁하는 유일한 기업

업계에서 흔히 ‘암드’로 불리는 AMD는 1969년 설립된 실리콘밸리 1세대 기업이다. 중앙처리장치(CPU), GPU, 고객 요청에 맞게 제품을 개발해주는 세미 커스텀 솔루션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엑스박스와 플레이스테이션 등 콘솔 게임기에 들어가는 핵심 칩 역시 AMD가 공급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고성능 CPU와 고성능 GPU를 동시에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로 꼽힌다.

김현서 디자이너

김현서 디자이너

AMD는 설립 초기 인텔의 하청업체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며 성장했다. 특히 제품 성능은 인텔보다 다소 부족했지만, 특유의 ‘가성비’를 앞세워 살아남았다. 한때 PC용 CPU 시장에서 30%대 점유율을 차지하며 인텔을 견제하던 AMD는 당시 야심차게 출시한 AMD FX 프로세서가 처참한 성적을 내면서 존폐 위기까지 몰리게 된다.

파산설까지 나오던 위기의 순간 회사를 구해낸 인물이 현 AMD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리사 수였다. 대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에 이민 온 그녀는 IBM과 프리스케일 등 반도체 기업 엔지니어를 거쳐 2012년 총괄 부사장으로 AMD에 합류했다. 당시 AMD는 CPU에서는 ‘영원한 제왕’ 인텔에, GPU에서는 엔비디아에 크게 밀리며 고전하고 있었다.

리사 수의 선택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그녀는 인텔과 엔비디아, 두 거인과 정면으로 대결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꿰뚫고 우선 PC 시장 CPU에 집중했다. 2017년 회사의 명운을 걸고 출시한 CPU ‘라이젠(RYZEN)’이 성능 면에서 인텔의 ‘코어 i 프로세서’를 능가하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저렴해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리사 수라는 본명보다는 ‘빛사 수’ ‘갓(God)사 수’ 등 긍정적인 별명으로 통했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한 걸음 뒤에 항상 AMD가 있다”

CPU 시장에서 ‘존재감 없는 2인자’로 조롱받던 AMD를 다시 ‘무시할 수 없는 2인자’로 만든 리사 수는 이제 엔비디아의 GPU 시장을 겨냥한다. 앞서 CPU 시장에서 합리적 가격과 뛰어난 성능으로 인텔 제국을 무너뜨렸던 경험이 있는 만큼 똑같은 전략을 GPU 시장에서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때마침 최근 AI 열풍 속 엔비디아의 GPU 가격이 폭등한 현재 상황이 AMD에는 절호의 기회다. AMD가 신제품 MI300X의 가격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H100과 같거나 다소 저렴하게 출시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AMD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MI300X’. AMD

AMD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MI300X’. AMD

AMD의 MI300X 칩은 최대 192GB의 메모리를 탑재해 큰 AI 모델에 장착할 수 있다. 엔비디아 H100의 120GB 메모리를 능가한다. 리사 수는 “MI300X 칩은 AI 모델을 위해 설계됐으며 엔비디아 H100 대비 2.4배의 메모리 밀도와 1.6배 이상의 대역폭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당장 엔비디아 독점 체제에 피로감을 느꼈던 기업들이 AMD의 도전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엔비디아의 GPU 제품은 공급이 밀려 지금 주문해도 최소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으로 알려진다. 전 세계 1위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AWS(아마존웹서비스)는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에 AMD의 새로운 MI300X 칩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AMD ‘2인자 동맹’ 탄생할까

‘2인자’ AMD의 도전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2인자 삼성전자가 함께 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1위 엔비디아의 GPU는 대부분 파운드리 선두 기업인 TSMC에서 만들어진다.

지난달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타이베이 2023 전시회에서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자사의 신제품을 발표하고 있다. EPA

지난달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타이베이 2023 전시회에서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자사의 신제품을 발표하고 있다. EPA

문제는 최근 AI 열풍으로 TSMC의 라인이 이미 가득 찼다는 것이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엔비디아가 TSMC에 긴급주문을 요청하면서 5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공정 가동률이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AMD 입장에서는 칩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어줄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AMD는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 4나노 공정 칩 생산에 대해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AI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선단 공정 기술을 가진 곳은 삼성전자뿐이다. 삼성 입장에서도 AMD 같은 글로벌 주요 고객이 자사 최신 공정을 이용해 성공적인 결과를 낸다면 TSMC 추격에 본격적으로 불씨를 지필 수 있다.

두 회사는 지난 4월 차세대 고성능·저전력 그래픽 설계자산(IP)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확대했다. 고성능 GPU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도 삼성전자가 맡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삼성전자와 AMD

삼성전자와 AMD

AMD는 삼성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엑시노스 개발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AMD의 GPU 기술을 삼성 엑시노스에 활용하는 것이 파트너십의 핵심이다. 자체 AP 부활이라는 삼성의 목표와 ATI를 퀄컴에 매각하며 모바일 GPU 분야에서 뒤처졌던 경쟁력을 다시 찾으려는 AMD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GPU 시장 1위에 도전하는 AMD와 파운드리 1위에 도전하는 삼성전자 사이 공동 전선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TSMC에 맞서 AMD와 삼성전자가 ‘쓸 만한 대안’이라는 것만 증명해낸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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