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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 시사 ‘매파적 동결’에 증시 상승, 낙관론 지나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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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06면

미 연준, 15개월 만에 금리 동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파월은 올해 중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파월은 올해 중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3월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금리 인상 행진은 15개월 만에 일단 쉼표가 찍혔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의 명분이 됐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충분히 억제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2년 6월의 최고치 9.1%에서 지난달 4%까지 하락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 2%보다는 훨씬 높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농산물을 제외한 5월 핵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5.3%에 달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통제 하에 들어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소비자물가지수는 향후 물가의 향방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고기를 파는 식당을 예로 들어 보자. 고기와 함께 제공되는 상추 가격은 작황에 따라 두세 배 오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상추 가격이 급등해 원가 부담이 커지더라도, 식당 주인이 고기 1인분 가격을 이와 연동해 올리진 않는다. 상추 가격은 늘 급등락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4%까지 하락한 미국의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상추와 같이 변동성이 큰 품목들의 가격 변동이 모두 포함된 지표이고, 5.3%에 달하는 핵심 소비자물가지수는 음식점에서 파는 고기 가격에 비유할 수 있다. 상추 가격은 변동성이 크지만, 고기 1인분 가격은 한 번 오르면 내려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은 핵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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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6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한 것은 미국 민간 은행 시스템에 가해지고 있는, 혹은 앞으로 더해질 압박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이 파산했다. 지방은행들이라고는 하지만 8000여 개에 달하는 미국 은행 중에서 자산 규모 기준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14위, 실리콘밸리은행은 16위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위기’는 자연적인 긴축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자금조달의 비용을 높여, 돈의 회전율을 떨어뜨린다. 은행위기에서 비롯되는 신용 경색도 비슷한 효과를 불러올 수 있어 연준은 추가 금리 인상이 가져올 수 있는 ‘과잉 긴축’의 효과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정치권의 정부 부채한도 타결 이후 나타나게 될 국채 발행 증가에 대한 고려도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 중요한 고려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부채를 더 늘릴 수 있게 된 미국 정부는 연말까지 1조1000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 국채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자금 조달은 민간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구축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어, 이 역시 어느 정도는 긴축의 효과를 발생시킨다.

연준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일단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통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파적 동결’이라는 향후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행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6월 FOMC에서는 금리가 동결했지만, 연내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점도표가 공개됐다. 매파적 동결은 형용모순적인 단어들의 조합인데, 이번 FOMC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의 복잡한 속내를 엿볼 수 있었다. 파월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을 ‘건너뛴다고(skip)’ 말했다가, ‘건너뜀’이라는 단어가 다음 FOMC에서의 거의 확정적인 금리 인상을 의미하기 때문에 곧바로 그 표현을 수정했다. 인플레이션을 보면 아직까지는 매(hawkish)로 남아있어야 마땅하지만, 금융 불안을 고려하면 비둘기(dovish)가 되고 싶은 분열적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금융시장은 ‘건너뜀’이 아닌 금리 인상의 ‘중단(pause)’ 선언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불씨가 남아있는 한 어떤 중앙은행도 비둘기의 모습으로 소통하기는 어렵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이를 보여줬다. 지난 1월 캐나다 중앙은행은 G7 국가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금리 인상 중단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물가 상승률의 둔화가 더디게 나타나자 6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4.5%→4.75%)했다. 캐나다의 금리 인상 이틀 전 호주연방준비은행도 동결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리 인상을 단행(3.85%→ 4.1%)했다.

미국의 통화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연말까지는 남아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6월 FOMC 직후 미국 주식시장은 강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어쨌든 긴축 사이클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기대를 주가에 투영한 것이다. 다만 동상이몽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온도차는 꽤 큰 것 같다. FOMC에서의 금리 동결은 5월 말 이후 금융시장의 지배적 컨센서스였는데, 시장금리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민감히 반응하는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5월 말 이후 6월 15일까지 0.21%포인트나 상승(4.45%→4.66%)했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 주식시장의 S&P500지수는 5.9%나 상승하면서 2022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시장의 우려가 과하거나, 주식시장의 낙관론이 지나치거나 두 경우 중 하나일 텐데, 주식시장의 낙관론이 과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최근의 주가 상승으로 미국 S&P500지수의 올해 예상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0배까지 높아졌다. 금리가 떨어져야 정당화될 수 있는 밸류에이션이기 때문에 채권시장과 무관하게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이어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방은행 위기가 잦아들고 있지만, 신용 위기에 대한 긴장의 끈을 아직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인플레이션 압박과 은행 시스템의 긴장 정도에 좌우되겠지만, 미국의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봐야 한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연내에는 멈춰지겠지만, 높아진 금리가 낮아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재무적으로 취약한 경제 주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을 복기해 보면 2년여 동안 지속됐던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났던 시기는 2006년 6월이었다.

프랑스 금융기관 BNP파리바의 펀드 환매 중단을 통해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금융시장에 반영되기 시작했던 시기는 2007년 8월로, 금리 인상 중단 이후 1년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높아진 금리가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취약한 누군가에게는 큰 하중이 실렸던 것이다. 6월 FOMC 전후 나타나고 있는 주식시장의 낙관은 과한 것 같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했다. 2018년부터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부의 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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