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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기우제 정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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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기우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가뭄이 계속돼 농작물이 말라죽고 아사자가 속출하면 임금이나 부족의 장, 종교 지도자가 하늘을 향해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다 비가 내리면 제사장의 지극정성이 통했다며 민심이 환호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으면 자칫 신성한 권위가 크게 훼손되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백성들의 고통을 마냥 외면만 할 수는 없었으니, 정치·종교 지도자들에게 기우제는 웬만해선 피하고 싶은 양날의 칼이었던 셈이다.

상대 실책만 비는 천수답 정치로는
민심이란 큰 배 결코 띄울 수 없어

기우제를 얘기할 때 ‘인디언 기우제’를 빼놓을 수 없다. 애리조나 사막의 호피족 인디언들은 한가을 이상 고온에 물이 말라버리면 인신 공양까지 불사하며 비를 갈구했다. 특이한 건 이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는 점이다. 인디언들의 영적 효능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단지 비가 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언젠간 비가 내리게 돼있는 자연의 섭리가 성공 확률 100%를 보장한 것이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가 “기우제는 사기”라고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지만 개인의 목숨과 부족의 운명이 달린 인디언들에게 ‘비 올 때까지 기우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기우제가 한창이다. 여의도 정치권에 민심의 지지와 호응이란 단비가 내린 지도 한참 됐다 보니 여야 가릴 것 없이 ‘기우제 정치’에 몰두해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뭔가 빌어도 잘못 빌고 있다는 거다.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을 개발해 널리 소통하며 민심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상대를 공격해 반사이익을 얻는 데만 혈안이란 점에서다.

실제로 여권은 “야당이 현 정부가 계속 헛발질만 하라며 매일 고사를 지내고 있다”고 비난하고 야권은 “검찰이 없는 증거를 쥐어짜며 뭐 하나 나올 때까지 기우제식 수사를 거듭하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스스로의 힘과 내공으로 지지율을 높이진 못하면서 오로지 상대편의 실수와 실책에만 기대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천수답 정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적대적 공생이란 말이 나오는 것 아니겠나. 누가누가 더 못하나 경쟁 속에 상대가 없으면 홀로 설 능력조차 없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순망치한도 이런 순망치한이 없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남 탓하는 정치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이야 워낙 진영으로 갈라져 있어서 상대를 아프게 비난할수록 인기를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일 뿐이다. 중도층이든, 상식이 있는 중산층이든, 자녀를 저녁마다 학원에 보내는 가정주부든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유권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상대방만 들입다 후벼 파는 정치인,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한국의 정치인들만 모르는 진실이다. 이러니 정당 지지도가 좀처럼 30%대를 넘지 못하고 비호감도는 60%에 육박하는 것 아니겠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서는 술잔 하나 온전히 뜨지 못한다. 물이 얕으면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 법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 소음이 끊이질 않는 이유다. 상대 당의 실책과 그에 대한 공격이 유일무이한 득점 루트인 얄팍한 정치로는 민심이란 큰 배를 결코 띄울 수 없다. 게다가 기우제를 지내다 보면 비가 언젠간 내리게 돼있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엔 내년 4월 총선이란 마지노선이 정해져 있어 주야장천 기우제 정치에만 기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엔 진보·보수가 있을지 몰라도 정책은 이제 진보·보수의 차원을 넘어 누가 더 유능하냐의 싸움이 됐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심의 극심한 가뭄 속에 여야 모두 제3자의 손에 총선의 운명과 당의 존폐를 맡겨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 있다. 민심은 기우제를 지낸다고 돌아서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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