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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원초적 본능, 보상중추 작동 안 되게 훈육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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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28면

러브에이징

‘호모 비오랑스(Homo Violence, 폭력적 인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로제 다둔이 ‘폭력에 의해 정의되고 폭력으로 구조화된 인간’이라는 의미로 명명한, 호모 사피엔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인류 최초의 상징적인 살인자로 불리는 성경 속 인물 카인이 신의 사랑을 받는 동생 아벨을 질투해 살해한 사건을 통해 ‘태초에’ 폭력이 있었고, 문명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인종 말살과 테러리즘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폭력: ‘폭력적 인간’에 대하여』).

폭력 가해자 남성이 여성의 4.3배

폭력성은 직립 보행을 시작한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되는 과정에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진화시킨 원초적 본능이다. 태아기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상태로 태어난다. 선사시대 인류의 발자취에서도,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21세기 현대인에게서도 호모 비오랑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2016년 스페인 그라나다대학 생태학 호세 마리아 고메즈 교수팀은 지구촌 1024종의 포유류를 대상으로 동족이나 영아 살해율을 비교한 논문 ‘인간의 치명적 폭력에 대한 계통발생적 뿌리’에서 인류의 살인율이 포유류 평균보다 7배 정도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Nature, 538(7624):233-237).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면수심의 폭력 범죄가 지구촌 곳곳에서 쉬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생존본능과 이기심이 발화시키는 폭력성은 딱히 배우지 않아도 체화(體化)된 원초적 본능이다. 폭력을 본 적이 없는 아기도 화나면 악을 쓰고 물건을 던지는 식의 폭력을 행사한다. 실제 인간의 폭력성은 두 돌 무렵 최고조에 달한다. 이때부터는 훈육을 통해 ‘폭력을 사용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을 지속해서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성장하면서 폭력성을 억누르는 힘이 생긴다. 전쟁, 재난 등 무정부 상태가 되면 누구나 순식간에 폭력성이 발동해 방화·약탈·살인 등을 저지를 정도로 본능의 힘은 강하다.

통상 폭력 범죄는 남성이 많이 저지르는데 특히 살인, 상해, 강도, 협박, 공갈 등의 강력 범죄자 비율이 높다. 2021년 국내 폭력성 강력범죄 수감자도 전체 23만2001명 중 남성 18만7469명, 여성 4만3127명(18.6%)이다. 흉악한 강력범죄의 여성 비율은 살인 19%(147명), 강도 13.1%(100명), 방화 17.6%(151명)로 간과할 수 없는 숫자다(「범죄분석통계」, 검찰청). 고령사회가 되면서 한국의 노인 범죄율도 매년 증가해 2020년 15.8%, 2021년은 17%를 차지한다.

이처럼 폭력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인류가 공유하므로 방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이 전개될 위험이 상존한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폭력성의 본질을 알고 촘촘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폭력은 의식주, 성욕, 착취, 권력, 신념 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뇌의 폭력 회로가 작동하면서 나타난다. 예컨대 불안과 공포,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편도체는 이를 ‘위험’으로 감지하고 시상하부에 전달해 폭력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때 이성적인 전두엽(앞쪽 뇌)이 폭력을 쓰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판단하면 폭력 욕구는 억제된다〈그림 참조〉.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치매 환자,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등은 이런 합리적인 판단이 안 돼 수시로 폭력을 행사한다.

폭력을 쓰는 방식은 남성과 여성이 차이가 난다. 남성은 충동적으로 힘자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여성은 폭력을 신중하게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며〈표 참조〉 대상도 주로 여성, 어린이, 애완동물 등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아동학대 수치만 보더라도 가해자 중 83.7%가 부모인데 친부가 45.1%, 친모는 35.6%로 남성이 여성의 1.27배다. 일반적인 폭력 가해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4.3배나 많다는 사실과 대조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살인을 하고 싶어서” 온라인에서 처음 만난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 사건, 귀가하던 낯선 여성을 따라가 무차별적으로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범죄 등으로 폭력에 대한 강력한 대처 방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서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방안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합리적인 법·원칙 통해 다스려야

인간은 폭력적인 호모 비오랑스이자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다. 폭력 본능도 합리적인 지혜를 발휘하면 적절하게 다스릴 수 있다. 범죄자도 감옥살이는 싫어한다. 사회제도가 제대로 작동해 폭력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훨씬 크면 사회 구성원들의 폭력 충동은 줄어들 것이다.

반면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 폭력으로 후과(後果) 없는 이익만 얻게 되면 뇌는 도파민을 분비해 쾌락과 만족을 느끼면서 그 사실을 기억한다. 일단 이런 보상중추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다음에는 더 큰 범죄를 갈망하고 저지르기 쉽다. 고화질의 CCTV와 유전자 검사, 안면 인식 기술 등 첨단 과학을 동원해 범죄 검거율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흔히 ‘세상은 점점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합리적인 원칙과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면 범죄는 현저히 줄기 마련이다. 유럽에서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이 중세 시대에 비해 현대의 법치 사회에서 35분의 1로 감소했다는 사실은 단적인 예다.

정부가 강력범죄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 달라는 민심에 얼마나 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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