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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거꾸로 흐른 벤자민처럼, 젊어지는 약 나올 가능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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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26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점심을 먹은 후 책상에 엎드려 자는 버릇이 있다. 왜 낮에 잠이 더 잘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잠깐의 낮잠은 참 꿀맛이다. 다만, 간혹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자면 자국이 생기는데 최근 들어 그 자국이 참 오래간다. 자국이 남은 채 겸연쩍게 모임에 참석하면 한소리 듣게 된다. 책을 너무 좋아한다느니, 첫 만남이 참 인상적이라느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노화 질병론과 노화 가속 나이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 기대수명은 84.3세로 10년 전보다 7세가 더 늘었다. 수명이 증가하는 만큼 노년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노화에 대한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우선 노화는 건강이 아닌 질병이다. 이전까지 노화는 자연 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특히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노화에 질병코드 MG2A를 부여했다. 질병코드는 환자에게만 부여되어 진단 및 치료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인데 이런 조치는 노화에 따른 질병들을 통합적으로 분류하고 노화 치료를 본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지난 30년간 노화를 늦추고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그 연구 결과 칼로리 제한이나 운동 같은 웰에이징(well-aging) 생활 방식이 강조되었다. 또한 노화 질병론 등장 이후 노화를 저지하는 항노화(anti-aging), 젊음을 되돌리는 역노화(reverse-aging) 같은 과학적 방법도 주장되고 있다.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입장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일러스트.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일러스트.

노화 연구에 박차가 가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2019년 발표된 ‘노화 가속론(aging booster)’ 때문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평생 세 번의 노화 가속기가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하루하루 서서히 늙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순간 갑자기 늙는 것일까? 나이가 매년 한 살씩 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천천히 꾸준히 늙어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스탠퍼드대학교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 코레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에 따르면 인간이 80세 이상을 살 경우 34세, 60세, 78세에 각기 1년간 급속하게 늙는다고 한다. 그 3년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마치 롤러코스터에서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을 치듯 노화에 가속이 붙는다는 것이다. 밤을 꼬박 새워본 경험이 있다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하룻밤 사이 갑자기 폭삭 나이든 얼굴처럼, 좀 거칠게 말하면 인간은 평생 세 번만 늙는다 할 수 있다.

코레이 교수 팀에 따르면 이 세 번의 급격한 노화는 혈장단백질과 관계가 있다. 혈장단백질은 혈액 응고와 면역을 담당하는데 총 3000개 가운데 1379개만 34세, 60세, 78세에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급변한 혈장단백질은 대부분 다른 장기 조직에서 옮겨온다. 즉, 인체 내 다양한 장기에서 시작된 노화는 혈장단백질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혈장단백질의 변화를 통해 다른 장기의 노화 정도를 측정할 수 있고, 개인의 노화 상태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제 인간의 살아온 날 수가 아니라 노화도를 측정하는 생체 시계도 선보일 전망이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나이가 34, 60, 78세 중 어느 하나의 근처에 있다면 행운이다. 이 시기만 주의하면 급격한 노화의 파도를 이겨낼 수 있다. 그렇다면 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 또는 적어도 늦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노화 저격수 항노화(Anti-Aging)

일본 교토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사진 교토대]

일본 교토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해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사진 교토대]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면역 억제제와 당뇨 치료제 중에 노화를 방지할 수 있는 항노화 약들이 있다. 면역 거부 반응을 보이는 장기 이식 환자들에게 주로 사용되는 약물인 라파마이신에서 노화를 저지하는 약효가 최종 확인되었다. 이 약물은 원래 미생물을 이용해 개발된 항진균제로 시작돼 면역 억제제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효모·초파리·쥐 등에서 수명 연장 효과가 확인되었으며, 인간에게서도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보고 되었다. 이 효과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염색체 끝부분인 텔로미어(Telomere·말단소체)가 짧아지는 것을 억제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당뇨 치료제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던 메트포르민은 최근 세포 노화를 지연시키고 생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능이 확인되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메트포르민 복용이 치매,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 노화의 발생 확률을 낮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영국 카디프대학교 연구팀은 메트포르민을 복용하는 당뇨병 환자의 생존 기간이 증가함을 입증했다.

젊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 항노화제를 적극적으로 섭취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임상실험 중이다. 미국 14개 의료센터에서는 2016년 65~79세 3000명을 대상으로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라는 임상 실험을 시작하였다. 대규모 연구에서 기대한 결과가 나온다면 메트포르민은 항노화 약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젊음의 회복 역노화(Reverse Aging)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역노화를 위한 시도도 한창이다. 역노화를 현실화시킬 대표적인 두 가지 발견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야마나카 인자’의 발견이다. 일본 교토대학교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노화 세포를 젊게 만드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쥐의 피부 세포에 네 가지 유전자 조절 인자(Oct4, Sox2, Klf4, c-Myc)를 주입해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네 가지 ‘야마나카 인자’를 주입해 만든 줄기세포를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라고 이름 붙였다. 이 공로로 그는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야마나카의 기술은 다음에 소개될 역노화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가능성을 열었다. 즉 두 번째로 소개할 후성유전체 조작이다. 하버드대 유전학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를 비롯한 연구진은 올해 1월 “포유류 노화의 원인은 후성유전학적 정보의 소실”이라고 발표하면서 노화는 후성유전 정보(epigenetic information)가 사라져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노화는 오랫동안 DNA 돌연변이가 그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싱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노화의 원인은 후성유전 정보의 소실에 있다. 우리 몸에 40조 개의 세포가 있지만 유전 정보는 200개만 있다. 200개의 동일한 유전 정보만으로 다른 일을 하는 40조 개의 세포가 될 수 있는 것은 후성유전 정보 덕분이다. 유전 정보가 동일하더라도 후성유전 정보가 다르면 다른 일을 하는 세포가 된다. 노화는 바로 이 후성유전 정보가 망가질 때 가속화된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연구진들은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로 만들 때 사용하는 인자(Oct4, Sox2, Klf4)를 쥐에 주입했다. 그 결과 노화된 쥐가 다시 젊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노화를 위해 후성유전자를 조절하는 것은 DNA 돌연변이를 수정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며, 따라서 후성유전체 조작이 역노화의 방법으로 적극 활용될 전망이다. 이제 영장류를 대상으로 추가 실험이 진행될 예정인데 인간의 노화 과정을 지연시키거나,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은 역노화의 열쇠를 찾기 위해 장수 생물체들에게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22년 11월 과학 뉴스 사이트 라이브 사이언스의 기사에 따르면 ‘장수 동물 톱10’에 히드라(불로불사), 작은보호탑해파리(불로불사), 대양백합조개(507년), 북극고래(200년 이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북극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 중 가장 오래 사는 동물로, 이는 암에 저항하고 노화 방지를 위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결과라고 한다. 또한 작은보호탑해파리는 세포 재생으로, 히드라는 전신에 있는 줄기세포로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 한다. 유전자 변이나 세포 재생,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역노화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항노화제나 역노화제가 시중에서 판매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필자는 당장에 살 것이다. 책 자국을 없애기 위해, 아니 이왕 비싼 돈 내고 복용한다면 숱이 줄어든 머리 또는 가물가물한 눈을 위해서라도 꼭 복용할 것이다. 어쩌면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 벤자민처럼 젊어질 수도 있겠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든다. 버튼이 부모, 친구, 애인, 딸 등 함께했던 사람들을 다 잃고 결국 혼자만 남아 불행하지는 않았을까? 아이고,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한 번뿐인 인생을 멋있게 늙어가는 게 낫겠다. 또래끼리 같이 나이 들면서 마음이라도 젊게 산다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 웰에이징이 곧 젊음이다! 그때야 비로소 더 이상 노화에 순서가 없어지는 것이다.

김동훈 인문학자. 그리스·로마 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리더의 언어사전』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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