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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 푸른 하늘 적게 본 어린이, 팬데믹 ‘격리 근시’ 급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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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26면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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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보면 어린 주인공이 하늘을 바라보자 어르신이 그를 향해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땅을 보고 살거라. 하늘은 멀다. 종놈 눈길이 멀면, 명이 짧은 법이다.” 머슴은 늘 자신의 발길만 봐야지 하늘을 보면 빨리 죽는단다. 완전한 억지 주장이 아닌가.

전 세계가 양반·상놈의 구분이 사라진 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현대인들은 멀리 보지 못하는 근시의 강한 전염력에 시달리고 있다. 근시는 2010년 이후 현재 세계 곳곳에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아니지만 그 파괴력이 상당한데,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이 근시가 될 것이며 망막 박리, 백내장, 녹내장, 심지어 실명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격리 근시(Quarantine myopia)

근시는 스마트폰이나 책의 글자 등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만 멀리 있는 것은 흐릿하게 보인다. 한자로 ‘근(近)’과 ‘시(視)’를 합쳐서 만든 말로, 영어로는 ‘near-sightedness’라고 불린다. ‘눈을 가림’이라는 의미를 지닌 고대 그리스어 ‘뮈옵스(myōps)’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 ‘Myopia’도 있다. 한자나 영어는 ‘가까운 곳을 봄’을 강조한 반면 그리스어는 ‘먼 곳을 못 봄’을 강조했다.

먼 곳이 흐릿해지는 이유는 각막과 수정체(렌즈)를 통해 들어온 상이 망막(필름)에 맺히지 않고 그 앞에 맺혀서 초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 곳의 상이 초점이 맞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시인 경우 안구가 정상인보다 더 성장하여 수정체와 망막의 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유아기는 생애 중 가장 빠른 성장 시기다. 이때 유아들은 매년 평균 5~6㎝정도씩 성장하는데 안구도 자연히 커진다. 안구는 보통 8~9세까지 급격한 성장을 보이다가 천천히 커지는데, 이때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거리도 늘어난다. 멀리 있는 상을 볼 때 수정체는 두께가 얇아지면서 초점이 망막에 정확히 맺히도록 한다.

하지만 근시의 경우 20대 중반까지도 안구가 비정상적으로 계속 자라나 수정체가 두께 조절에 실패하게 된다. 심지어 안구가 계속 커지게 되면 망막에 균열이 생기면서 심각한 시력 저하가 발생하며 결국 급성 질환이나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안구는 왜 비정상적으로 계속 자라는 것일까?

근시는 일반적으로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안과 연구에 따르면, 유전보다는 환경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알래스카 북단의 이누이트족은 생활방식이 독특한 종족으로, 성인 중 근시인 경우는 131명 중 2명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자녀와 손자녀들은 근시가 절반 이상이나 됐다. 이 통계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비교적 단기간의 급격한 근시 발생률은 유전자 변이가 생기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 판단하고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는 근시의 원인을 환경 요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전문가들은 근시 증가의 원인으로 어린이들의 일조량 감소를 지적한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 따르면, 2020년 3월 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으로 선언한 후 8~17세 연령대에서 근시 발생율이 현저히 높아졌다고 한다. 학교 휴교와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11억 명의 어린이들은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밝은 대낮에도 실내에서 스크린만 들여다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외출이 줄어든 동안 스마트폰·태블릿·컴퓨터·TV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어린이들의 근시가 늘었기에 ‘격리 근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 빛과 도파민

인문학자의 과학 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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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확히 어떤 디지털 기기가 어느 정도 활용될 때 근시의 위험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입장에 따라 서로 상이하다. 아직까지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어른들도 온라인 학습과 화상 회의 등 스크린 시간을 늘리고 있지만 근시 증가 현상은 모든 연령층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히 어린이들에게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린 학생들에게 할당된 온라인 학습 과제가 나이가 많은 학생들에 비해 적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어린이들의 빠른 근시 증가세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만약 디지털 기기의 더 강렬한 사용이나 근거리 작업 때문이 아니라면 ‘격리 근시’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독일 튀빙겐 대학교의 프랑크 쉐펠(Frank Schaeffel) 교수가 이끄는 안과 연구팀은 밝은 빛이 병아리의 근시율을 낮춘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이후 밝은 빛이 근시로부터 눈을 보호한다는 사실은 다른 동물에게서도 보고되었고 사람에게서도 확인되었다. 과학자들은 밝은 빛과 근시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해 연구하다가 특히 망막에서 발견되는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에 집중하게 되었다.

도파민은 뇌와 망막에서 발견되는 신경 전달 물질로 우울증·파킨슨병 등의 신경계 질환에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빛 노출에 의해 자극받아 분비된다. 또한 도파민은 눈의 근육을 당겨서 수정체와 망막의 거리를 좁히고 해상도와 선명도를 조절하는 데에도 기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0년 쉐펠 교수는 도파민과 근시의 관계를 밝히고자 병아리의 눈에 도파민 억제제인 스피페론을 주입하여 관찰했다. 예상대로 도파민이 사라지자 근시 보호 효과도 사라지면서 근시 발생율을 높였다.

망막의 도파민은 보통 하루 주기로 낮 동안에만 증가하지만 어두운 실내에만 머물게 되면 이 주기가 방해를 받으면서 분비되지 않는다. 밝은 빛을 받아 망막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안구의 성장을 늦추고 수정체와 망막의 거리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10세 이전까지 급격한 성장을 보이던 안구는 이후 20대 초반까지는 느린 성장을 보이지만 근시인 경우 계속 급성장한다. 하루 20분 정도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보내는 횟수가 많을수록 근시 발생률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도 도파민의 효과다.

‘빨주노초파남보’ 적외선. 자외선 등 빛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도대체 어떤 광선이 도파민 분비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답은 청색광이다. 인간의 눈은 빛을 통해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눈의 망막에는 어두운 실내에서 작용하는 간상체와 밝은 실외에서 작용하는 추상체라는 두 종류의 광수용체가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 특히 추상체는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색을 구별하여 파란색·초록색·빨간색에 반응한다. 추상체가 색깔의 차이를 감지하는 것은 빛의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청색광보다 파장이 긴 적색광은 약한 빛에서도 감지되지만 상대적으로 파장이 짧은 청색광은 강한 빛에서만 감지된다.

# 파아란 하늘빛

빛은 망막에서 전기 신호로 변환돼 뇌로 전송된다. 뇌는 이를 분석해 시각 정보를 만들어 내고 동공의 크기를 조절해 시야를 최적화한다. 동공은 적색광과 청색광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 적색광에 대한 동공의 반응이 청색광에 대한 반응보다 약하다. 이는 망막 내에서 적색광에 반응하는 세포들이 청색광에도 일부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색광이 강하게 들어올 경우 적색광에 반응하던 광수용체가 청색광에도 반응하면서 동공이 더 많이 확장된다. 동공의 확장을 통해 들어온 청색광은 우리 망막에 도파민을 더 많이 분비하게 한다. 결국 많은 빛 중에서 청색광이 근시 예방에 크게 기여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근시를 예방하기 위해서 푸른색 하늘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어두운 실내에서 코를 박고 지낸다. 이전에 흙에서 자라던 그때 비록 그 시절의 아이들은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혜택을 못 보았을지는 모르지만 항상 보던 것이 있었다. 어린이날이라는 동요의 가사를 보자.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신나게 뛰어놀아 상기된 그 아이들의 눈에는 푸른 하늘과 푸른 벌판, 심지어 푸른 오월 등 세상이 온통 푸르름투성이었다. 그 푸르름 덕택에 그 시절에는 근시도 드물었다. 하늘과 바다의 청색광이 우리 망막에 도파민을 만들고 그것이 근시를 예방하기도 했겠지만 힘든 시절을 이길 힘도 넉넉하게 주었을 것이다.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오월에 저토록 아름다운 ‘파아란 하늘빛’을 마음껏 보도록 하고 싶다. 이 땅의 부모들이 자녀들의 근시를 고민하는 것은 단지 시력을 걱정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늘을 본다는 것은 저 말리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 그 너머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아란 하늘빛’이 그립다. 땅만 쳐다보는 근시안을 극복하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푸르름을 찾아주자.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김동훈 인문학자. 그리스·로마 문학 및 수사학, 철학을 공부했다. 인문학의 서사를 담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퓨라파케’ 대표. 『인공지능과 흙』 『브랜드 인문학』 『리더의 언어사전』 등을 썼고,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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