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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부부 비극…"내가 해냈어" 총알 끝까지 쏜 美총격범 한 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번화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만삭의 한인 임신부와 신생아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시민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시애틀타임스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3일 오전 11시쯤 시애틀 벨타운의 한 교차로에서 한인 부부가 타고 있던 차량에 괴한이 접근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 이로 인해 남편 권모(37)씨가 팔에 총상을 입었고, 8개월 임신부였던 아내 권씨(34)는 네 발을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아이 역시 분만됐지만 이내 숨을 거뒀다. 아내 권씨의 친구라고 밝힌 동원씨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고펀드미에 올린 글에서 “잠깐이지만 아빠는 딸을 안아볼 수 있었다”면서 “내 친구는 아이를 한번 안아보지도 못 한 채 눈을 감았다”고 원통해 했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한인 권모(37)씨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편지가 쌓여있다. 지난 13일 권씨 부부가 타고 있던 차에 괴한이 다가와 총을 난사하면서 8개월 임신부였던 아내 권씨(34)가 사망했다. 아이 역시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숨졌다. 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한인 권모(37)씨 부부가 운영하던 식당 앞에 시민들이 놓고 간 꽃과 편지가 쌓여있다. 지난 13일 권씨 부부가 타고 있던 차에 괴한이 다가와 총을 난사하면서 8개월 임신부였던 아내 권씨(34)가 사망했다. 아이 역시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숨졌다. AP=연합뉴스

인근에서 퓨전 스시 식당을 운영하던 부부는 이날도 평소처럼 가게로 향하던 중 교차로의 신호에 멈춰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법원에 제출된 수사 기관의 문건에 따르면 범인은 코델 모리스 구스비(30)라는 인물이었다. 구스비는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될 때 “내가 해냈어, 해냈어”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시애틀 벨타운 부근의 교차로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만삭의 한인 여성과 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은 사건 당시 한인 부부가 타고 있었던 테슬라 차량. 운전석 창문에 총알 구멍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시애틀 벨타운 부근의 교차로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에 만삭의 한인 여성과 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은 사건 당시 한인 부부가 타고 있었던 테슬라 차량. 운전석 창문에 총알 구멍이 보인다. AP=연합뉴스

시애틀타임스는 경찰이 9㎜ 탄피 6개를 사건 현장에서 찾았다고 보도했다. 구스비가 땅에 버린 권총의 탄창은 비어 있고, 슬라이드(장전장치)는 뒤로 고정된 상태였다. 시애틀타임스는 “범인이 탄약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부부를 향해 총을 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해당 권총은 도난 신고 상태였다.

구스비는 경찰 초기 진술에서 “(부부의)차 안에서 총을 보고 맞대응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근 폐쇄회로(CC)TV에는 부부의 흰색 테슬라 차량이 교차로에 정차하자마자 구스비가 곧장 손을 뻗으며 달려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범행 동기가 명확치 않은 가운데 현지 매체 폭스13 시애틀은 그가 체포될 때 경찰들에게 “정신 건강과 관련한 전력이 있다”이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이 인종을 겨냥한 범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폭스13 시애틀에 따르면 구스비는 최근 일리노이주에서 시애틀로 이주했으며, 가정폭력과 마약·불법 무기 사용 혐의 등의 중범죄 전과가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경찰은 살인과 폭행, 총기 불법 소지 혐의를 적용해 그를 기소할 예정이다.

대낮에 벌어진 비극에 권씨 부부의 식당 앞에는 꽃과 편지 등을 놓고 가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권씨 식당의 주변 상인인 마이클 부파노는 “아내 권씨는 아침마다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했던 사람”이라며 “대낮에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 꽃을 들고 온 타냐 우는 시애틀타임스에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증오의 대상이 됐던 아시아 커뮤니티에 또 한 번의 타격이 됐다”고 말했다.

2015년 결혼한 권씨 부부는 두 살배기 첫째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한다. 2018년에 지금의 식당을 열었고, 곧 둘째 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망한 아내 권씨의 친구 동원씨는 “첫째는 아직 엄마가 사망한 것을 모른다. 엄마를 더는 볼 수 없다는 비극을 두 살짜리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권씨 부부를 돕기 위해 마련된 크라우드 펀딩은 15일까지 10만 3874달러(약 1억 3200만원)가 모였다.

브루스 하렐 시애틀 시장은 성명을 통해 “남편 권씨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씨름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역 사회의 안전을 위해 거리에서 총기 없애고, 피해를 준 사람들에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애틀에서는 올해 1월에도 길거리에 주차된 차량에서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던 커플을 향해 괴한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두 명이 사망하는 등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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