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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일방존중 뿌리 뽑아야"…'상호존중' 中 억지, 역으로 찔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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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문제 삼으며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문제 삼으며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중·한 양국은 비록 나라 상황이 다르지만 상대방이 선택한 발전 방향을 '상호 존중'해야 한다.”(2021년 9월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치국 국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예방 발언)

“싱하이밍 주한중국 대사가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

중국이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노선을 비판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왔던 ‘상호 존중 원칙’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쏟아낸 발언들이 중국 스스로 그동안 한국에 강요해왔던 원칙을 허무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상대국 외교관을 직접 거명해 “국민이 불쾌해 한다”고 비판한 것 역시 상호 존중을 요구했왔던 중국의 이중 잣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윤 대통령은 중국으로부터 상호 존중이 아닌 일방적 존중을 강요받으면서도 이에 순응하는 태도를 버리고 당당한 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싱 대사의 발언 이후 초치나 논평 등 통상적 대응을 넘어 대통령이 직접 비판을 가한 건 상호 존중이 어느 일방의 의무가 아닌 양국이 동시에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상호 존중 원칙은 그동안 중국이 외교적 갈등 국면에서 상대국을 압박하는 핵심 논리였다. 미·중 경쟁 국면에선 늘 미국을 향해 평화공존·협력상생과 함께 상호 존중을 3대 원칙으로 강조했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3월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양국은 상호 존중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文 향해 "상호 존중" 압박 공세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2021년 외교부장 자격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왕 위원은 '상호 존중'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2021년 외교부장 자격으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왕 위원은 '상호 존중'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 정부 때 중국은 이러한 원칙론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는 2021년 9월 왕이(王毅)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상호 존중을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한 첫 번째 요소로 꼽으며 했던 발언이었다. 왕 부장은 당시 ▶상대방이 선택한 발전 방향 ▶상대방의 핵심 이익과 관심사 ▶민족의 문화 ▶국민 정서 등의 요소들을 일일이 언급한 뒤 문 전 대통령에게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훈계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

그러나 당시 발언에 대해 외교가에선 "장관급 인사가 상대국 대통령을 향해 존중을 강요하는 듯한 언행을 대놓고 한 자체가 중국이 내세우는 상호 존중의 원칙을 스스로 어긴 외교적 결례"란 평가가 적지 않았다.

특히 핵심 이익과 관심사에 대해 상호 존중이 필요하다는 중국 측의 발언은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 등에서 한국이 미국 등 서방의 대중 공세에 동참하지 말라는 취지로 풀이됐다. 문재인 정부에선 이러한 결례에 가까운 발언 뒤 실제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대만해협 문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 등 중국이 예민해하는 현안에 대해 입장 표명을 최소화하거나 침묵하면서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라는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저자세 외교 고착화…뿌리 뽑아야" 

윤석열 정부는 중국이 상호 존중을 앞세워 일방적인 존중을 강요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대중(對中) 접근법을 ‘당당한 외교’로 설정했다. 윤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한·중은 상호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중국을 일방적으로 존중하는 저자세 외교가 고착화됐다. 이런 태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난해 3월 발간된 대통령 공약집에는 상호 존중을 한·중 관계의 대원칙으로 설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상호 존중을 한중 관계의 대원칙으로 설정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중국이 한국 측을 압박하며 사용하던 표현을 그대로 중국 측에 요구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대통령실

정부는 상호 존중을 한중 관계의 대원칙으로 설정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중국이 한국 측을 압박하며 사용하던 표현을 그대로 중국 측에 요구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대통령실

정부는 한·중 관계가 우호 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전제로 상호 존중을 지속적으로 강조할 예정이다. 이는 중국이 상호 존중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 역시 우호·협력 국면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싱하이밍 대사 논란을 계기로 한·중 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상호 존중’ 등의 기준점을 우리가 먼저 제시한 상황이 됐고, 결과적으로 양국이 이제 탐색기를 끝내고 본격적인 대화·소통에 나서야 할 필요성이 부각됐다”며 “중국으로선 저자세 외교에서 탈피한 한국 정부의 스탠스가 달갑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한·중 소통 없이 한국이 미·일과 밀착하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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