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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다시 일어서는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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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6월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이달 제주에서는 평화와 예술을 되돌아보는 국제 규모의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올해 18회를 맞이한 제주포럼(5월 31일~6월 2일)과 16회 행사를 치른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12~15일)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나누고, 문화·예술 교류의 중심지로서 발돋움하려 제주도의 의지가 돋보였다.

제주포럼은 2000년 남북회담을 기념하며 첫발을 내딛었다.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을 선포한 제주도는 과거 이념 대립이 빚은 공동체의 상처를 화해와 상생으로 치유하고, 국제 평화도시로서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거듭해 왔다.

평화포럼·페스티벌 잇단 개최
이념대립이 빚은 상처 씻어내
‘섬’보다 ‘다리’가 되려는 노력

지난해 제주 해비치 페스티벌 아트마켓에 나온 김성훈 댄스프로젝트팀.

지난해 제주 해비치 페스티벌 아트마켓에 나온 김성훈 댄스프로젝트팀.

지난해 포럼에서 필자도 직접 발표한 적이 있다. ‘폭력에 저항하는 부드럽지만 강력한 힘-문화예술’ 세션에서다. 당시 우크라이나 현지에 있는 『전쟁일기』의 저자 올가 그레벤니크를 화상 연결해 들었던 그곳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다. 희미하게 끊기듯 전해지던 그녀의 음성은 현지의 참혹한 상황을 대변하듯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이었다.

한반도와 동북아 중심의 평화토론에서 그 범위를 인도 태평양으로 넓혀나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제주선언문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요충지인 제주가 새로운 지구촌 평화와 번영을 이끌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는 세계의 미래를 선도하는 중심지로 거듭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2025년 APEC 정상회담을 유치할 뜻도 밝혔다.

오늘날 인도 태평양 지역은 세계 인구의 60%가 넘게 거주하는 경제적 중심지이다. 올해 포럼의 제목처럼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할 날을 기대해본다. 지난해 포럼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에서 평화에 대한 의미는 각별합니다. 4·3사건뿐만 아니라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쟁, 왜구의 침략,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의한 민란(이재수의 난) 등이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6만이 주둔한 전략적 기지였습니다. (중략)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 세월의 아픔을 품고 있습니다. 제주가 예술적 가치로 재조명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주포럼 끝난 다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마켓 ‘제주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이 열렸다. 주최 측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한문연)는 ‘개척’을 의미하는 (PIONEER)를 전면에 내세웠다. 올해를 국내외 공연예술시장 개척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뜻에서다. 이승정 한문연 회장은 “오래전 인류의 개척에는 총과 칼이 쓰였지만 이제는 문화예술로 세상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자체 문예회관과 예술인이 직접 소통하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문화가 빈약한 지방에 예술 생태계를 이뤄보겠다는 뜻이다.

물론 앞으로 채워가야 할 게 많다. 무엇보다 페스티벌 자체의 대중적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현장 예술인이 소외되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 지자체 소속 문예회관의 한계 때문인지 예산 편성 또한 자율성이 부족해 실제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공동 주최인 제주도의 적극적인 역할도 기대해본다. 해비치 페스티벌은 일 년 중 가장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이 제주를 찾는 자리다. 국내 최대 규모의 축제를 활용해 지역 예술인과 타 지역 예술인이 경계 없이 교류하게 된다면 제주도의 엄청난 문화자산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만한 관광문화 콘텐트도 없을 것 같다.

해비치 페스티벌은 ‘예술의 섬’ 제주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제주 도민과 관광객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문화가 되는 지역예술의 새로운 개화를 기대한다. 그렇게 제주는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다.

제주에선 설문대 할망에 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울 만큼 몸짓이 큰 설문대 할망은 제주 도민들에게 명주실 100동을 모아온다면 육지를 잇는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도민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외딴 섬 생활을 운명으로 여기며 순응해간다.

제주는 그 모자랐던 명주실 한 동을 이제 평화와 예술로 이으려고 한다. 고립과 소외에서 벗어나 세계로 통하는 중심이 되려 한다. 섬이라 끝이 아닌, 섬에서부터 시작하는 처음이 되려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정현종 시인의 ‘섬’처럼….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