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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사가 명의 되도록 AI가 진단 도와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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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창업의 길 50. 뷰노 이예하 대표 

혁신창업 스타트업 뷰노 이예하 대표가 2일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우상조 기자

혁신창업 스타트업 뷰노 이예하 대표가 2일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우상조 기자

침상에 누운 왕후의 손목을 감은 명주실이 닫힌 문틈 사이로 길게 이어진다. 어의(御醫)는 문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눈을 감고 명주실을 통해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손끝으로 느낀다…. 사극에서 흔히 보는 어의의 진단 장면이다. 손으로 짚어봐도 어려운 맥박의 변화를 실 끝으로 느껴 몸의 상태를 진단해 냈다면 명의 중 명의임에 틀림이 없다.

현대 의학에서는 초음파나 X선ㆍCT(컴퓨터 단층촬영)ㆍMRI(자기공명영상)와 같은 영상진단장치로 진맥을 대신한다. 신체를 투과하는 음파나 전자기파가 다양한 성분의 매질을 통과하면서 나온 몸속 변화를 영상으로 전환해 읽는 방법이다. 진맥도 마찬가지지만, 문제는 의사의 ‘실력’이다. 암 조직이 뻔히 보이는데도 못 알아채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영상 속 미세한 픽셀 덩어리를 보고 “○○가 의심됩니다. 조직검사를 해봅시다”라고 짚어내는 명의도 있다. 환자라면 누구나 명의의 진단을 받고 싶을 터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모든 의사가 명의가 될 수도 없고, 환자 입장에선 해당 분야의 명의가 누구인지 알기도 어렵다. 방법이 없을까.

혁신창업 스타트업 뷰노 이예하 대표가 2일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옥 로비에 전시된 특허증 앞에 섰다. 우상조 기자

혁신창업 스타트업 뷰노 이예하 대표가 2일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옥 로비에 전시된 특허증 앞에 섰다. 우상조 기자

포스텍 컴퓨터공학 박사 마치고 삼성 연구원 생활

현대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AI)은 그걸 해낸다. 수많은 영상진단 데이터를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딥러닝(Deep Learning) 기법으로 학습한 인공지능 솔루션이 있다면, 어떤 의사라도 화타 또는 허준의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의료 인공지능 솔루션 스타트업 뷰노는 '명의'의 탄생을 돕는 기업이다. 딥러닝을 이용해 의료용 인공지능 진단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 주 사업이다.

지난 2일 서울 강남대로 신논현역 사거리 옆 신논현타워에 둥지를 튼 뷰노를 찾았다. 로비 한편에는 뷰노의 기술력을 알려주는 수십 개의 특허증과 영상진단 비디오 등이 전시돼 있다. 회의실과 휴게실이 있는 9층에는 호프집처럼 생맥주를 종류대로 뽑아 마실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추었다.

이예하(45) 대표는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으로 학ㆍ석ㆍ박사를 마쳤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ㆍ기계학습)을 이용한 검색기법이 박사과정의 주 연구 분야였다. 졸업 후 2012년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선후배 중에는 삼성종기원에 들어가 연구를 이어가다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도 그렇게 국내 최고 기업의 연구소를 시작으로 계속 연구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딥러닝 기법은 삼성종기원에서 처음 접했다.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무실 모습. 9층 휴게실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놨다. 우상조 기자

서울 강남대로 뷰노 사무실 모습. 9층 휴게실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춰놨다. 우상조 기자

"기업에서보다 더 재미있는 일 하고 싶어 창업"

당시는 딥러닝 기법이 세상에 처음 공개돼 인공지능 연구의 새 장을 막 열던 시절이었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슈퍼비전’팀이 세계 최대 이미지 인식 경연대회 ‘ILSVRC(ImageNet Large Scale Visual Recognition Challenge)’에 처음 출전해 85%의 정확도로 우승을 차지했다. ‘딥러닝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의 제자들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등 세계 유명 연구기관이 개발한 인공지능과는 정확도가 10% 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다.

이 대표는 당시 삼성종기원에서 이런 최신 딥러닝 기법을 활용해 음성인식 엔진을 만드는 팀에서 근무했다. 연구는 재미있었고, 성과도 좋았다. 하지만 이 대표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엔 삼성종기원이 좁았다. 직장생활 3년 차이던 2014년 겨울, 능력을 인정받던 안정된 직장에서 뛰쳐나와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이 대표는 “종기원도 회사다 보니 순수한 연구보다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해야 했다”며 “딥러닝 기법을 이용해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 동료들과 함께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박사 출신 연구자의 창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창업에 나섰다가 일이 꼬여 신용불량자가 돼 서울역 광장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식의 얘기가 흔한 시절이었다. 이 대표는 그런 세상의 얘기에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나에겐 남들보다 뛰어난 딥러닝 기술력이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 창업의 위험에 대한 불안감은 별로 없었다”며 “염려 말고 해보라던 중학교 교사 아내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도서벽지에서도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

창업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이 대표의 딥러닝 기술력을 곧바로 인정받았다. 창업하자마자 중소기업청 팁스(TIPS) 사업에 선정됐다. 팁스는 우수한 아이템을 가진 초기 기술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민간과 정부가 함께 투자ㆍ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듬해엔 국내 최초로 딥러닝 엔진 ’뷰노넷‘을 자체 개발하고, 아산병원과 함께 딥러닝 기반 폐 영상 데이터베이스 검색기술 연구를 진행했다. 인공지능의 핵심은 데이터베이스인데, 민감한 환자의 개인정보를 입수해 학습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이 대표는 “병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환자 데이터를 학습해 솔루션을 개발한 후 입수한 개별 데이터는 파기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데이터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뷰노는 창업 첫해 연말 힌튼의 제자들이 우승했다는 ILSVRC 국제대회에 나가 이미지 분야에서 5위에 입상했다. 2018년에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의료기기 인허가를 받고, 상용 서비스도 시작했다. 손을 찍은 X선 촬영 필름을 보고 뼈 나이를 추정하는 솔루션이다. 병원 소아과에서 아동이 앞으로 얼마나 자랄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주로 쓴다. 현재 국내 500개 병ㆍ의원에서 사용하고 있다. 뷰노는 이 외에도 망막질환을 알아내는 안저(眼低) 영상진단, 흉부 X선 판독, 뇌 MRI, 맥박ㆍ혈압ㆍ호흡ㆍ체온 데이터를 이용한 환자 심정지 예측 등 12가지 인공지능 의료기기 솔루션을 상용화했다. 투자도 무리 없이 이어졌다. 2017년 시리즈 A 30억원, 2018년 시리즈 B 117억원, 상장을 앞둔 2020년 기업공개 전(Pre-IPO) 펀딩 48억원 등 총 195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2021년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주관사들이 내놓은 뷰노의 기업가치는 2000억원에 달했다.

이예하 대표는 “정확도가 높은 딥러닝 인공지능 기반 진단 솔루션을 이용하면 특정 분야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오진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최고 수준의 진단을 할 수 있다”며 “대도시의 병원뿐만 아니라 의사가 부족한 도서벽지에서도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뷰노는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진 못하고 있다. 지난해 83억원 매출에 157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대표는 “아직은 뼈 나이 추정과 심정지 예측 솔루션 쪽에서만 주로 매출이 일어나고 있다”며 “전반적인 경기가 어렵다 보니 그 영향을 받고 있지만, 다른 솔루션들도 2~3년 뒤엔 사업화 정상궤도에 올라서서 흑자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뷰노의 고객인 병ㆍ의원 입장에서는 우리 솔루션이 아무리 뛰어나도 별도의 보험수가 적용을 받을 수 있어야 도입하게 된다”며 “정확한 진단은 중장기적으로 병·의원 경영에도 이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이런 제도적 문제도 해결돼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뷰노는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을까. 전체 매출 중 해외는 아직 10%에 불과하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진단 솔루션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데이터베이스인데, 출시된 진단 솔루션이 모두 국내 환자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진출하려면 그 나라 환자의 데이터베이스를 학습한 인공지능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뷰노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하버드대학 등 미국 주요 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한 다양한 솔루션 개발을 진행 중이다. 성과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인공지능 기반 흉부 CT 영상판독 보조 솔루션인 ‘뷰노메드 흉부 CT AI’와 뇌 정량화 의료기기인 ‘뷰노메드딥브레인’이 브라질 위생감시국(ANVISA)으로부터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했다. 앞서 지난 8일에는 인공지능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인 ‘뷰노메드딥카스'가 미국 식품의약처(FDA)로부터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됐다.

이 대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높은 수준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뷰노의 비전”이라며 “진단 보조를 넘어 질병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과 일상생활 속 만성질환 관리까지 사업의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딥러닝(Deep Learning)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기계학습’의 한 종류다. 인간의 뇌는 학습 과정에서 여러 신경세포를 형성하고 서로 연결해 ‘신경망’을 만든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한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ㆍ추론하고 스스로 학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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