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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떼입찰’로 아들 회사 부당지원…공정위, 호반에 과징금 608억원

중앙일보

입력

계열사를 다수 설립한 뒤 입찰에 참여해 낙찰 확률을 높이는 ‘벌떼입찰’로 아들 소유 회사를 부당지원한 호반에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호반건설은 이 같은 방식으로 장남과 차남이 소유한 회사에 1조원이 넘는 이익을 몰아줬다. 이는 경영권 승계로 이어졌다. 다만 공소시효가 지나면서 검찰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벌떼입찰로 택지 51개 따내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호반건설의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과징금 608억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부당지원의 시작은 벌떼입찰이다. 호반건설은 2010년 1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공공택지 시행사업 입찰에서 51건을 벌떼입찰 방식으로 낙찰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공공택지는 추첨으로 공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호반건설은 페이퍼컴퍼니 수준의 계열사를 다수 설립한다. 이들 계열사와 비계열사까지 동원해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당첨 확률을 높였다. 호반 측이 동원한 회사만 34곳에 달했다.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호반건설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호반건설은 벌떼입찰을 통해 공급받은 공공택지 중 의정부·김포·동탄 등 23곳을 호반건설주택‧호반산업에 양도했다. 호반건설주택은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동일인)의 장남이, 호반산업은 김 회장의 차남이 소유한 회사다. 전매 가격은 낙찰을 통해 공급받은 가격과 동일했다. 총 1조7133억원이다.

아들 회사, 분양이익 1조3587억원

호반건설주택과 호반산업 등이 택지에 아파트를 건설한 뒤 분양을 통해 벌어들인 매출은 5조8575억원에 달한다. 분양이익만 1조3587억원이다. 이들 회사는 시행사업 경험이나 역량이 부족했으나, 호반건설이 업무와 인력을 지원하면서 분양까지 마쳤다. 이 같은 방식으로 증여세도 피했다.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호반건설의 부당내부거래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호반건설의 부당내부거래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김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각각 소유한 회사는 공공택지 분양으로 매출이 크게 늘었고, 국내 건설시장에서 점유율이 확대됐다. 이를 근거로 2018년 호반건설이 호반건설주택을 흡수합병할 때 합병비율은 1:5.89로, 호반건설주택이 더 높게 평가됐다. 호반건설주택의 최대 주주였던 장남이 단번에 호반건설 지분 54.73%를 보유하게 되면서 경영권 승계까지 이뤄졌다. 유성욱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장은 “호반건설주택을 만든 것부터 경영권 승계 목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과징금 부과했지만, 공소시효는 지나

김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초 공정위 조사관리관실은 고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전원회의에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호반 측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호반건설주택이 분양을 통해 이익을 얻은 시점이 아닌 호반건설과 호반건설주택 간 공공택지 전매 시점(2015년)을 기준으로 공소시효를 따지면서다. 형사소송법에 따른 공소시효는 5년이다. 조세범처벌법은 조세포탈 등에 대해 공소시효를 7년으로 별도 적용한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보니 과징금은 부과하지만, 고발은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호반건설 측은 “의결서 접수 후 이를 검토해 향후 절차를 진행하겠다”며 “결과를 떠나 고객, 협력사, 회사 구성원 등에 심려를 끼친 점 송구하게 생각하고, 더 엄격한 준법경영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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