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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당 불법 현수막' 석달만 모아도, 여의도 3배 덮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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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5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5월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 횡단보도에 정당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뉴스1

정당 현수막을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게 허용한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된 뒤 현수막 쓰레기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가 올해 1분기(1~3월)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철거했다고 보고한 정당 현수막 무게를 취합했더니, 1300t(톤)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때 수거한 현수막 1100톤보다 많은 규모다. 개수로는 약 197만장으로 추산되고 가로로 길게 이어 붙이면 약 1만㎞, 지구 둘레의 1/4 수준이다. 넓이로 계산하면 약 8.9㎢에 이른다. 여의도(면적 2.9㎢)를 3번 덮고도 남는 면적이다.

불법 현수막 철거 업무를 하는 서울 송파구의 한 공무원은 “체감상 불법 현수막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토로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선거가 있는 기간과 없는 기간 등의 차이로 구체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올해 1분기는 선거가 없었는데도 폐 현수막이 크게 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처리한 정당 현수막은 대부분 게시 기한(15일)이 지난 불법 현수막이다.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직후 거리와 도로에 정당의 현수막이 우후죽순 걸린 뒤 철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남국(무소속)·김민철·서영교(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안들을 합쳐 만든 개정법은 폭넓은 정당의 홍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의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규격과 장소 제한 없이 현수막을 달 수 있게 했다.

“불법 현수막 두 배로 늘어”…민원도 2.2배 증가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통과된 지난해 5월 29일 국회 본회의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통과된 지난해 5월 29일 국회 본회의 모습.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지자체는 게시 기간이 지난 현수막에 대해 철거 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법적 조치를 시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동안 정당 현수막은 선거 후 지자체가 관례적으로 치워왔는데, 선거 아닌 기간에도 난립해 행정력 낭비가 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도 2배 이상 늘었다. 행정안전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개정 옥외광고물법 시행 이전 3개월 동안 집계된 전국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6415건이었는데, 개정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1만 4197건으로 2.2배로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 관계자는 “시민들의 안전과 미관상 문제로 민원이 폭발해 신속히 철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당 현수막 탓에 발생한 안전사고는 1분기 동안 8건이 보고됐다. 경북 포항과 전북 김제에서는 강풍으로 인해 가로등에 걸린 현수막에 압력이 가해져 가로등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낮게 걸린 현수막 탓에 보행자가 목을 다치는 등의 안전사고도 6건 있었다.

현수막 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유독물질 발생

지난해 3월 10일 서울 서대문구청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쓰인 거리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 뉴스1

지난해 3월 10일 서울 서대문구청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쓰인 거리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사진 뉴스1

폐 현수막은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재활용이 어렵고 대부분 소각 또는 매립한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현수막 1장을 소각하면 4㎏의 온실가스와 다이옥신 등 1급 발암물질이 배출되며 매립 시에는 잘 분해되지 않는다. 허승은 녹색연합 자원순환팀장은 “현수막 대부분은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터(폴리에스테르) 원단에 단면 코팅 처리한 합성섬유”라며 “화학적인 재활용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고 업사이클링을 해도 실용성이 낮아, 또 다른 쓰레기가 된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일부 지자체는 폐 현수막을 마대 자루 또는 에코백으로 재활용하기도 한다. 환경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대 지방선거 당시 발생한 정당 폐 현수막(9220t)의 재활용률은 33.6%였다. 이후 2020년 21대 총선, 2021년 재보궐 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 2022년 8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선거 관련 폐 현수막 재활용률이 24.8%로 떨어졌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의상실에서 경기도 여성단체협의회 수원시지회 회원들과 수원시가족여성회관 관계자들이 지방선거 등에서 사용된 폐현수막으로 낙엽 수거용 자루를 만드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시 가족여성회관 의상실에서 경기도 여성단체협의회 수원시지회 회원들과 수원시가족여성회관 관계자들이 지방선거 등에서 사용된 폐현수막으로 낙엽 수거용 자루를 만드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정당에서 직접 철거한 현수막까지 포함하면 온실가스 배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지만, 선거 기간이 아닌 시기에도 여야가 현수막으로 상호비방전을 이어가면서 폐 현수막으로 인한 온실가스가 대량 배출한 셈”이라고 말했다.

“현수막 처리 비용, 정당이 부담하게 해야”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앞서 행안부는 지난 5월 정당 현수막 게시를 자제하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사항이다. 일선 지자체에서는 가이드라인의 단속 기준이 모호해 정당 현수막 난립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천시는 상위법 충돌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천시 옥외광고물 조례를 개정해 정당 현수막을 일반 현수막과 같이 지정 게시대에만 걸 수 있게 하는 등 제한 장치를 마련했다. 행안부는 조례안이 옥외광고물법을 위배한다며 재의를 요구했지만, 인천시가 받아들이지 않아 법정 다툼으로 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국회에는 정당 현수막의 표시 방법, 기간, 장소·개수 제한 등을 추가로 규율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허승은 팀장은 “정당들이 현수막을 사전 선거운동처럼 활용하고 있다”며 “내년 총선까지 이 상황을 끌고 간다면 환경 오염이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플라스틱과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국제적·국가적 과제에 위배된다”며 “현수막 처리 비용을 후보자나 정당이 부담하게 하는 정책이라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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