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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만 한국서 덕보던 선거권·건보 혜택…이참에 손보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ㆍ중 간에 상호주의에 맞도록 제도 개선을 노력해달라" (윤석열 대통령, 13일 비공개 국무회의)

정부가 한ㆍ중 간에 '상호주의'에 위배되는 제도를 조사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간 중국은 한국에게 안 해줘도, 한국은 중국에게 우호적으로 취하던 조치를 거둬들일 수 있을지 살펴본다는 취지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인한 후폭풍의 일환이지만 기존 정책의 모순을 이참에 손 보는 의미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4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대통령실사진기자단.

中 10만 명이 韓 지선 유권자

대표적인 게 영주권자에 대한 지방선거 투표권 문제다. 한국은 영주권을 획득한 지 3년이 지난 외국 국적자에게 2005년부터 지방 선거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기준 외국인 유권자 12만여명 중 78.9%인 약 10만 명이 중국인이다. 자연히 한국 내 외국인 투표권 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중국인인데, 거꾸로 중국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국적자의 투표권이 없는 건 상호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2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공직선거법상 외국인 투표권 조항에 상호주의를 반영하는 것은 국익과 상식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후 실제로 정부·여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에 착수했다. 특히 외국인이 영주권을 일단 받고 나면 이후 한국에 살지 않아도 투표권을 유지한다는 게 현행 법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여당에선 최소 5년 이상 지속적으로 한국에 거주한 영주권자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해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충남 논산시 연산초등학교 투표소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해 6월 1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충남 논산시 연산초등학교 투표소 모습. 프리랜서 김성태.

中 건보 재정만 적자

국민 세금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쌓고 혜택은 외국인이 본다는 이른바 외국인의 '건보 먹튀' 논란은 그간 주로 중국인에게 집중됐다. 중국에선 한국인이 건강 보험을 못 받지만, 국내에선 중국인이 건강 보험 급여로 혜택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가입자의 건보 재정 수지는 2013년부터 꾸준히 흑자를 기록했지만, 중국인의 경우는 유일하게 여전히 적자다. 2021년 기준 109억원 적자로 중국인만큼은 여전히 내는 보험료보다 받는 보험 급여가 많다는 뜻이다.

정부가 2019년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해 6개월 이상 국내에 거주해야 건보 가입 자격을 얻도록 하는 등 제도를 강화하면서 중국인 건보 재정의 적자 규모도 갈수록 줄고 있다. 다만 중국인을 포함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매년 늘어나는 만큼, 한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주는 국가와 아닌 국가를 구분해 수혜 범위를 대등하게 조정하는 등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의 모습. 뉴스1.

지난 3월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의 모습. 뉴스1.

부동산·제주도 무사증 논란도

중국인의 국내 부동산 거래가 타국민에 비해 월등히 많은데, 한국인은 중국에서 집을 매입하지 못하고 임차만 가능하다는 점도 상호주의 위배 사례로 지적돼 왔다. 중국에선 토지 소유권은 국가에 있고 개인은 사용권만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국내 외국인의 주택 보유 관련 통계를 처음으로 공개했는데,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택을 보유한 외국인 약 8만명 중 58.7%인 4만 7000여명이 중국인이었다. 국적별 보유 주택 수도 중국인이 53.8%(4만 4889채)로 1위였다.

이외에도 중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 외국인이 타 지역 공항을 거치지 않고 제주에 직접 들어오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는 점도 일각에선 상호주의 위배 사례로 지적한다. 이외에 비자 수수료 제도, 외교관 면세 규정 등에 있어서도 한국은 타국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대우을 해준다고 한다.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회동하는 모습. 싱 대사는 이날 취재진이 지켜보고 민주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등 주장을 담은 A4 5장 분량의 발언을 했다. 김현동 기자.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회동하는 모습. 싱 대사는 이날 취재진이 지켜보고 민주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등 주장을 담은 A4 5장 분량의 발언을 했다. 김현동 기자.

"상호주의·형평성 모두 살펴야"

다만 상호주의 위배 논란이 있는 여러 제도들은 뜻하지 않게 중국인이 최대 수혜를 보게 됐을 뿐, 중국 이외의 대부분 다른 나라 국민들도 혜택을 받던 조치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ㆍ중 관계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외교의 기본 원칙인 상호주의가 한ㆍ중 간에 제대로 지켜지는지 검토도 필요하지만 여타 국가와의 형평성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기계적으로 양국 간 대우의 등가(等價)를 맞추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14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회의 참석 차 일본으로 출국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상호 존중과 공동 이익이라는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ㆍ중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게 윤석열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이라며 "한ㆍ중 관계가 역행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자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주한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맞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 양국 간 갈등이 더 이상 '확전'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다만 정부 내부에선 논란의 '베팅 발언'을 한지 엿새째 잠행 중인 싱 대사가 이번 사태와 관련한 '결자해지'(結者解之·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책임진다)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싱 대사가 아무리 지난 수년간 거친 발언을 해왔다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게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라며 "최소한 본인 선에서 책임 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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