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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도 리포트 없냐"는 금감원 압박에도 악순환에 빠진 여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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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2일 금융감독원이 국내와 외국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당국은 ‘국내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 신뢰성 제고’를 주문했다. 유튜브 발 시장 쏠림 현상의 이유 중 하나가 여의도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리서치 보고서의 객관성과 신뢰성 제고는 증권가의 해묵은 숙제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지난 3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와의 간담회에서 리서치 보고서 개선 문제를 언급했다. 간담회에서는 ‘매도 리포트 증가’와 ‘독립리서치 제도화’ '보고서 유료화' 등의 해결책이 제시됐지만, 업계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가 쉽지 않다’는 자조가 팽배하다.

매도 리포트 왜 안 나오냐고? 불이익+관행+개인투자자 비난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국내 리서치센터가 매도 리포트(보고서)를 내지 않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년간 1만5300개의 리포트가 나왔지만 이중 ‘매수’의견이 절대다수(1만4444개)였다. 중립 의견(847개)과 매도 의견(비중 축소 포함·9개)은 소수였다.

매도 리포트 발간 활성화를 위해 금융투자협회는 2015년 증권사별 투자의견 비율을 협회 홈페이지에 공시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금투협 1분기 공시를 보면 28개의 국내 증권사 중 22개사는 전체 리포트 중 매수 의견 비중이 90%를 넘는다.

매도 의견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매도 리포트를 낼 경우 분석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게 애널리스트들이 토로하는 공통된 고충이다. 5년 차 애널리스트 A씨는 “매도 리포트를 내면 기업이 NDR(Non-deal round·기업이 애널리스트를 데리고 설명회를 도는 것)에 부르지 않거나 실사 방문을 거부하는 등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의 지나친 비난과 반발 등도 매도 의견 제시가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최근 에코프로에 대한 ‘비중 하향’의견을 제시한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감원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공매도 세력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투자자 민원이 빗발친 탓이다.

한국 증시의 특성상 매도 리포트가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0개가 넘는 상장사 중 100여개 기업만 커버하는 데 굳이 좋지 않은 기업까지 볼 필요가 없다 보니 매수 리포트만 나오는 것”이라며 “매도 리포트가 리서치센터의 신뢰 하락 문제에 있어서 본질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매도 리포트에 대한 수요가 적은 것도 국내 증시의 특징이다. 해외처럼 숏(하락)에 베팅하는 펀드나 투자자가 많지 않아서다. 한국 증시에서 가장 ‘큰 손’인 국민연금은 ‘숏’ 투자뿐만 아니라 대차거래조차 하지 않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센터장은 “해외보다 매도 리포트의 필요성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매도 리포트에 소극적인 태도가 관행처럼 굳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이 불이익을 준다고 하지만 기업이 정보를 주지 않아 리포트를 쓸 수 없다는 건 실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리서치센터 "지적 재산권 인정 등 리포트 유료화 필요"

매도 리포트 확대 등 리서치센터를 향한 금융당국의 지적과 개선 요구에도 시장에는 자조감이 팽배하다. 금융당국이 업무보고에서 밝힌 ‘독립리서치 제도화’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센터장은 “리서치센터 신뢰 하락은 스스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기관의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뿌리 깊은 불신인데, 독립리서치센터는 오히려 자본에 더 취약한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반문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 사이에서도 ‘매도 리포트 증가’보다는 ‘지적재산권 확보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컸다는 전언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매도 리포트가 많은 데, 외국계의 경우 기관에만 유료로 공개되고 지적재산권의 개념도 확실해 국내 증권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독립리서치를 표방하는 리서치알음의 최성환 대표는 “한때 증권가의 꽃이라 불리던 애널리스트가 지금은 구조조정 1순위 직업군으로 전락했다”며 “고비용 무수익 부서라는 오명이 생겨난 본질적 이유는 무료로 발간되는 보고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양질의 리포트 부족으로 인한 투자자 신뢰 저하’→‘리포트 유료화 난항’→‘자본 투입 부족으로 인한 경쟁력과 질 저하’의 악순환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초 여의도에서는 ‘길바닥에 떨어진 10원짜리보다 못한 애널리스트 보고서’라는 글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고 유료화해 리서치센터가 적정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양질의 보고서 생산을 통한 신뢰를 회복이라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고양이 목에 방울’ 누가 달까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쉽지 않다. 리서치센터에서 10년 이상 애널리스트로 일해온 C씨는 “애널리스트 보고서의 유료화가 리서치센터의 ‘이상’이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며 “한국에는 애널 보고서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데다 ‘애널의 전망이 맞지 않는다’는 개인 투자자의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유료화에 나서면 누가 받아들일까 싶다”고 말했다.

그나마 시장과 관계기관 사이에서 여러 시도는 이뤄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하반기 ‘거래증권사’를 줄일 수 있다고 최근 증권사에 알렸다. 리서치센터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려는 시도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메리츠증권 등 몇몇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보고서를 무료 공개하지 않는 등의 시도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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