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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의 세사필담

국력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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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유신 시대에나 유행했던 저 말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모든 게 국력이었다. 전국 체전이 국력 깃발 아래 열렸고,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는 카퍼레이드 주인공이 됐다. 국위를 선양한 애국자에게 베푼 선물이었다. 4전5기 홍수환, 탁구 여제 이에리사의 카퍼레이드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금빛 은빛 색종이가 나부꼈던 거리, ‘잘 살아보세’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을 출퇴근했던 사람들은 이제 6070이 됐다. 베이비부머, 전형적인 꼰대세대다.

꼰대세대에겐 가난이 더 익숙하다. 누리호가 땅을 박차고 치솟아도 실감이 안 난다. 대한민국이 우주선을 발사했단다. 한국형 K2전차가 위용을 뽐내도 미제 M1탱크와 소련제 T탱크 영상이 앞을 가리고, 폴란드에 수출한 FA-50 전투기가 상공을 갈라도 쌕쌕이만 할까 반문하기 일쑤다. 젊은 시절 뇌리에 또아리튼 흑백영상이 인생 황혼기까지 드리워져 있다. 인식전환이 늦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어느새 강대국 반열에 오른 한국
6070 베이비부머에겐 낯선 풍경
구성 영역 간 불화로 몸살 앓는데
국력과 상징자본 증발할까 두려워

세계의 강대국은 공통점이 있다. 침공을 감행했거나 식민착취를 했거나. 캐나다 빼고 G7이 모두 그런 나라다. G8에 살짝 끼어든 한국은 침략도 식민통치도 못한 케이스다. 국제적 순둥이라 내부 결기를 다질밖에. 우리끼리 ‘대한제국’이라 불러보았는데 이웃의 빈축만 샀다. 식민시대엔 국혼(國魂)으로 설움을 달랬고, 군부 때에는 ‘중단없는 전진’ 구호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했다. 허리띠를 졸라맸고, 음주가무를 자제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외쳤던 나라가 머리채를 잘라 수출했다. 규방 바느질 솜씨를 동원해 의류 수출국이 됐다. 이런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통과해서 G8에 당도했다. 경제력 세계 8위, 군사력 6위란다. 상전벽해인데 인생의 짐과 사회적 여건은 그리 나아진 게 없다고 느낀다.

6월 7일 한국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했다. 이번에는 견제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2012년에는 193개국 중 3분의 2 찬성 기준을 겨우 넘었다. 이번에는 단독후보, 향후 2년간은 유엔의 막강한 ‘빽’으로 한반도 전쟁가능성은 훨씬 낮아졌다. 6070의 눈으로 지금까지의 여정(旅程)을 돌아보면 운삼기칠(運三技七)이란 말이 떠오른다. 운이 3할, 노력과 기량이 7할.

며칠 전 우크라이나 댐 붕괴로 죄없는 마을들이 수장됐다. 왜 유엔군을 파견하지 못할까? 유엔군 파견은 한국이 유일무이, 앞으로도 없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상임이사국 5개국 중 러시아가 불참 통보를 했다. 천운(天運)이었다. 최빈국 한국이 수출대국이 된 데도 운이 따랐다. 전후 미국이 주도한 GATT(세금과 관세에 관한 일반협정) 덕분이다. 한국은 GATT 최혜국으로 지정돼 미국 시장에 면세품을 팔았다. 30년간 천운을 누렸다. 1970년대 중동 특수, 1990년대 중국 개방도 숨통을 틔운 행운이었다. 어렵게 열린 기회구조를 제때에 포착했다.

인류사는 전쟁사다. 전쟁이 끝나자 계획없이 마구 태어난 세대가 평생 참화를 겪지 않았다는 사실만큼 천운이 있을까. 게다가 꼰대세대의 기억엔 촌스러운 상품과 드라마, 패션과 노래, 음식과 문화가 K문패를 달고 세계 무대를 수놓고 있다니. 한강교 패션워크? ‘쓸쓸한 너의 아파트’를 찾아가는 ‘밤비 내리던’ 다리였는데. 우리의 집단가무가 BTS를 낳았고, ‘전원일기’가 ‘오징어 게임’으로 진화했단다.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은 기를 펴고 살았을 것을. 한국의 국력을 수놓는 저 특이한 상징자본들이 한순간에 증발할까 조마조마하다.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는 상징자본을 ‘예측가능한 정부’의 함수로 다뤘다. 누군가는 연성파워(soft power)라 해도 사회가 단단해야 그것도 진화할 운(運)을 잡는다.

정치학자 애쓰모글루가 이를 ‘레드 퀸 효과’로 설명했다. 사회가 단합해 열심히 달려야 독주하는 국가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그런데 36년의 민주화는 대의정치가 아니라 일종의 대리정치였다. 대리기사가 멋대로 달려도 방관할 수밖에 없는 통제불능 정치. 대리기사가 바뀌듯 기존의 정책을 잇겠다는 정권은 없었다. 예측 불가 정부는 사분오열 사회를 낳았다. 성장할수록 각 세대의 짐들은 불어나고, 청년실업에서 노인빈곤율까지 악화일로다. 기회구조는 자주 유실됐다. 정치권이 외친 민생(民生)은 항상 자기 변명이었다.

국가를 구성하는 5개 영역의 편차가 한국만큼 큰 나라가 있을까? 정치, 시민사회, 법, 관료제, 경제 간 발전수준의 격차가 뒤죽박죽, ‘영역 불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영역 불화는 불안심리와 사회적 자본의 파탄을 부추긴다. 강대국이라니? 갈 길이 멀다. 세계인들이 갈채를 보내는 저 빛나는 상징자본이 김수영의 시처럼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헬리콥터처럼 보이는 이유다.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는’ 현실을 가볍게 박차는 화려한 수직상승은 꼰대세대에겐 ‘비애와 설움’으로 비치고야 만다.(김수영 ‘헬리콥터’) 일종의 속죄의식인가. 평생 쪼그렸던 마음을 한번쯤 무장해제 해도 될텐데, 이 국력의 계절에.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