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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민원 111건' 굴레…한전, KBS 수신료 '절취선' 청구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대통령실이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스스로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함뉴스

김의철 KBS 사장이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이날 김 사장은 대통령실이 TV 수신료 분리 징수 도입을 철회하면 스스로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연함뉴스

전기요금 고지서에 적힌 TV 수신료를 걷는 건 한국전력공사(한전)지만, 가져가는 건 한국방송공사(KBS)다. 방송통신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가 대통령실 권고에 따라 전기요금에서 TV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징수 실무를 맡은 한전도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하반기 내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다. KBS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려면 방송법이나 방송법 시행령, 한전 약관 중 하나를 개정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게 가장 쉬운 상황이라서다.

방송법을 개정할 경우 67조 2항의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는 부분을 삭제해야 하지만 현재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전 전기공급약관에 손을 대려면 기본 공급약관 제82조 내 전기요금과 함께 청구할 수 있는 목록에서 TV 수신료를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KBS 동의 없이 한전 단독으로 약관을 고쳤다가는 법적으로 위약금을 물게 될 수 있다.

반면 방송법 시행령의 경우 43조 2항에 ‘고유 업무와 고지 행위를 결합해 행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된다. 방통위가 안을 마련한 뒤 국무회의를 거치면 연내에도 실현할 수 있다.

한전이 매달 청구하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TV수신료(2500원)가 표기돼 있다. 한국전력공사.

한전이 매달 청구하는 전기요금 고지서에 TV수신료(2500원)가 표기돼 있다. 한국전력공사.

11일 한전에 따르면 한전도 이에 맞춰 자체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할 경우 한전의 징수 의무는 사라지지만, 한전은 여러 경우의 수를 감안해 대안을 검토중이다. 우선 현행 3개월인 한전의 TV 수신료 환불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는 환불 요청 시 3개월 이하 수신료는 한전, 3개월 초과 수신료는 KBS가 환불하는 구조다. 다만 KBS에 환불을 요청하려면 ‘TV가 없어 KBS 방송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소명해야 한다. 2021년 기준 4만5266가구가 이런 식으로 환불을 받았다. 한전은 소명을 하지 않더라도 6개월까지 한전이 환불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수신료 분리 징수의 대안으로 한전은 고지서 일부를 쉽게 뜯을 수 있도록 ‘절취선’으로 나눠 수신료를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42~49조를 개정해 현재 전기요금에서 KBS 수신료(월 2500원)를 분리 징수하더라도 고지서를 따로 보내는 건 부담이어서다. 수신료를 별도 고지서를 통해 청구할 경우 고지서 제작비·우편료·수납 수수료 등에 연간 1850억원(2021년 기준)이 들어간다.

이와 관련해 KBS는 'TV 수신료는 TV 수상기 소지자라면 누구나 납부해야 할 ‘특별부담금’이므로 당사자에게 납부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줄 수 없다'는 반대 입장이다. 한전과 KBS는 3년 단위로 약관 갱신 협상을 하는데 현 계약 기간은 2024년 말 만료된다. 한전 관계자는 "소비자의 수신료 납부 선택권 제고 측면에서 (절취선을) 제안했지만, KBS가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없다"며 “계약 기간 중에라도 (TV 수신료 징수) 관련 법령 개정 등 사회적 합의가 있을 경우 조치가 필요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사실 한전은 TV 수신료를 ‘혹’처럼 여긴다. 한전에 떨어지는 수익은 적은데 직간접적인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6934억원의 수신료 중  KBS가 6272억원(90.4%), EBS가 194억원(2.8%)을 가져가 한전이 거둔 위탁수수료는 468억원(6%)에 불과했다. “재주는 한전이 부리고, 수신료는 KBS가 가져가는 구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위탁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한전의 영업 손실(32조6000억원), 올 1분기 손실(6조1700억원) 대비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물러난 정승일 전 한전 사장조차 “TV 수신료를 징수하지 않더라도 한전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수익이 적은데도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는 민원과 행정 부담은 오롯이 한전 몫이다. 지난해 한전이 접수한 수신료 관련 민원은 4만563건에 달했다. 일평균 111건, 15분에 1건 수준이었다. 한전 내부에선 KBS 좋은 일만 하고 뒤처리는 한전이 떠맡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양금희(국민의힘) 의원은 “한전이 탈원전 정책에 따라 무너진 경영을 회복하는데 역량을 집중해도 모자란 데 연 4만~5만건에 달하는 수신료 민원 처리에 시달리고 있다”며 “‘가욋일’이 고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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