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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보다 보수 낮고 승진 느려” MZ 공무원 65% 이직 의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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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10면

공무원 퇴직 러시

지난 4월 8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학교에서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을 보려는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8일 서울 서초구 소재 한 학교에서 국가공무원 9급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을 보려는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관세청 소속의 4년 차 9급 공무원인 정모(29)씨는 최근 의원면직(자발적 퇴직)을 결정했다. 모든 걸 쏟아부으며 도전했던 공무원 시험에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직자가 됐음에도 편의점 알바보다 못한 월급에 회의감을 느껴서다. 정씨는 “타 직무에 비해 승진도 느린 데다, 초과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180만원 수준의 월급으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며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고, 퇴직금도 거의 없지만, 의원면직 후 재취업이나 창업에 도전하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퇴직 이유를 밝혔다.

잘릴 걱정이 없어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무원이 점차 ‘비인기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45.2%는 ‘기회가 되면 이직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이들 중 재직 기간 5년 이하인 20~30대 하위직(6~9급) 공무원의 경우 절반이 넘는 65.3%가 이직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 10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어야만 ‘공직자’ 이름표를 달 수 있었던 시대는 가고, 텅 빈 철밥통을 끌어안은 채 새로운 둥지를 찾는 신세가 된 것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2018년 6039명이었던 20~40대 퇴직 공무원 수는 지난해 1만1693명으로 5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젊은 공무원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음에도 퇴사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일해도 오르지 않는 월급 때문이다. 한국행정연구원 설문조사에서도 5년차 미만 공무원들이 이직을 희망하는 이유 1순위로 낮은 보수(74.1%)가 꼽혔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9급 공무원 1호봉의 월급은 본봉(기본급) 기준으로 177만800원, 7급 공무원 1호봉은 196만2300원에 불과하다. 공무원 보수체계는 기본급에 각종 수당이 포함되는 구조임을 고려해도, 낮은 호봉의 젊은 공무원들은 최저시급(201만58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수령액을 받아든다. 인사혁신처가 매년 조사하는 ‘민관 보수수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대비 공무원 보수수준은 83.1%로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씨는 “아무리 공무원이라도 최저임금은 줘야 생활 유지가 가능하지 않겠나”라며 “지금의 임금체계를 유지한다면 뛰어난 인재들은 더 이상 공직사회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적은 월급에도 공직자라는 사명감과 고용 안정성에 만족하던 공무원도 더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공직사회 특유의 조직문화에 혀를 내두르고 퇴직을 결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박홍윤 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는 “MZ세대는 일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직업관을 갖고 있는데, 공직사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희생만 강조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 특성상 조직 내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벌어져도 은폐하려는 문화가 여전하고, 악성 민원인이 찾아와도 함께 대응하기보단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이들의 퇴직을 부추긴다. 박 교수는 “월급이 적다는 것은 이미 인지하고 공직에 입문하지만, 민원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는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상황에 처했을 때 받는 고통이 매우 크다”며 “민원 부서에 발령받으면 1년씩 휴직계를 내는 게 문화로 자리 잡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낮은 월급에, 수직적인 조직문화로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까지 내몰리는 경우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극단적 선택으로 순직을 청구한 공무원은 49명에 이른다. 지난 5월 한 달간 언론에 공개된 공무원 극단적 선택 사례도 5건에 달했다. 이들은 모두 기피부서 배치, 직장 내 괴롭힘, 악성 민원인 응대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장 최전선에서 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는 하위직 젊은 공무원이 모든 민원을 떠맡으니 말 그대로 몸을 갈아서 일하고 있다”며 “사기업과는 달리 도움을 주는 고위직 책임자나 동료도 없어 모든 걸 혼자 떠맡는 분위기가 조성돼 버티다 못해 극단적 선택까지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멈출 줄 모르는 ‘퇴직 러시’와 반복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 뒤늦게 조직 개편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 4월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이 5급 사무관으로 고속 승진할 수 있는 ‘속진임용제’를 도입했다. 지난 5월 한 달 동안 직원 2명이 연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던 원주시는 직장 내 갑질·괴롭힘 전수조사와 더불어 직원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재직 5년 이상~10년 미만 공무원들에게 특별 휴가를 5일 추가 부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공직을 떠나는 젊은 공무원들에게 필요한 건 휴가나 심리상담 등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닌 조직 체질의 근본적인 개선이다. 김태윤 교수는 “하위직, 젊은 공무원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며 “낮은 직급에 쏠려 있는 대민 업무를 중간 관리자급 공무원들이 수행하도록 직무를 분석 및 재조정해 수직적, 폐쇄적 문화를 전면 개편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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