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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고 넘어 ‘층층고’…“하루 18시간 일해도 7만원 남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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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08면

벼랑 끝 몰린 자영업자들

지난 8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이른 시간부터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지난 8일 오전 8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이른 시간부터 자영업자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원동욱 기자

“깍두기 썰고, 설거지하고, 홀 청소하고…하루 18시간 일해도 남는 건 7만원 남짓입니다. 이럴 거면 일당 14만원인 공사 현장에 나갈까 싶어요”

지난 5일 오전 4시 30분. 수원 영통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영민(46)씨는 막 가게 문을 닫으려고 했다. 어스름, 희망의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일했지만 ‘오늘도’ 절망이었다. 김씨는 “‘오늘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보다 ‘오늘도 고생만 하고 돈은 얼마 못 벌었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공공요금, 원재료 값, 최저임금이 줄줄이 오르고 대출도 곧 갚아야 한다”며 깊고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해 학원비도 걱정이었다. 오전 5시가 다 돼가는 무렵 거나하게 취한 손님 세 명이 주점에 들어섰다. “여기 몇 시까지 하나요?”라는 이들의 말에 김씨는 순간 고민했지만 “6시까지요”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막다른 곳까지 몰렸던 자영업자들이 엔데믹 이후에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씨의 말대로, 자영업자들 앞에 악재들이 달려들고 있다. 복싱으로 치면 코너에서 소나기 펀치를 맞고 있는 것이다. 잽·어퍼컷·훅처럼 각양각색의 펀치는 충격이 크다. 이중고, 삼중고를 넘어 겹겹이 쌓인 ‘층층고(層層苦)’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자영업자 수는 571만5000명. 그런데 생존율은 처참하다. 2021년 기준 숙박·음식점업의 1년 생존율은 65.9%, 3년 생존율은 44.3%, 5년 생존율은 22.8%로 나타났다. 10곳이 창업하면 5년 후에는 약 2곳 정도만 남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어떤 ‘층층고’와 맞닥뜨리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그들의 하루하루를 통해 살펴봤다.

39만 가구, 소득 70% 이상 빚 갚는데 써

“장사는 하고 있다는 걸 알릴 정도로만 불을 켜요. 자린고비가 따로 없지요…”

지난 1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 식당. 김모(51) 사장이 조명을 켰다. 그런데, 간판은 켜지 않았고 실내도 안쪽은 어두웠다. 김씨는 “전기료가 올라 최대한 아껴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정부는 지난달 16일부터 전기 요금을 올렸다. 킬로와트시(㎾h)당 8원 인상이다. 4인 가구 기준 월 3020원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전기를 많이 쓰는 자영업자가 느끼는 상승폭은 훨씬 크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50대 이성환(가명)씨는 “지금도 한 달 평균 100만~150만원가량 전기요금을 내고 있는데, 냉장고·에어컨 사용이 확 늘어나는 여름에는 감당이 될까 걱정”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덕양구의 김모 사장은 어둠이 완전히 내려온 오후 9시가 돼서야 식당 안쪽 조명도 켰다. 그러면서 식당 주방의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그 가스 요금도 올랐다.

“지난해 가스 요금으로 한 달 평균 70만원 정도 나갔는데, 올해는 10만원은 더 나가겠네요.” 경기도 구리시에서 20평(약 66㎡) 정도 규모의 삼겹살집을 운영 중인 신이현(31)씨의 말이다. 고깃집 중 삼겹살을 파는 곳은 가스 사용이 많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스 요금은 지난 1월 까지 전년 동월 대비 36.2%나 올랐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가스 요금은 지난달 16일부터 또 5%가량 인상돼 서민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 중인 정현철(45)씨는 “전기료와 가스요금 인상 자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 이후 이제 막 장사가 되기 시작한 자영업자들의 의지를 확 꺾지 않았나 싶다”며 “대출 이자 상환도 시작돼서 안 그래도 부담이 큰데 조금만 시기를 늦췄으면 어땠을까 아쉽다”고 말했다.

이들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소상공인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가 오는 9월 종료된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대출 특별 만기 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를 시행했다. 만기연장 조치는 2025년 9월까지 자율 협약에 따라 유지되지만, 상환 유예는 9월 종료돼 10월부터 기존 대출분에 대한 상환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빚에 허덕이는 중이라 한계에 내몰린 소상공인들이 연쇄 부도 상태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지난달 20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금융부채가 있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70% 이상인 자영업 가구는 38만8387가구로 집계됐다. 자영업 가구 중 약 39만 가구가 소득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는 것이다.

빚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전체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1019조 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최저임금 1만2000원? 차라리 저 혼자 가게 하고 말지요.”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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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늦은 오후에 만난 양모(55)사장의 말이다. 양씨는 서울 마포구에서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이 24.7% 인상 시 1인 자영업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베이글집을 운영하는 이민영(36)씨는 얼마 전 알바생들을 대폭 줄였다. 이씨는 “손님은 줄어드는데 인건비는 감당이 안 되니 장사를 할수록 손해를 보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됐다”며 “술집이나 고깃집과는 노동강도가 차이가 꽤 나는데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양날의 검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현재 일자리가 있는 근로자의 구매력 증대와 소매업체의 매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임금소득 불평등을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사업주가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낳아 일자리를 구하려는 근로자는 불리해지고 고용 감소나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최저임금의 주된 적용 대상이 영세·중소기업인 만큼 또 다른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요즘처럼 물가가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가능성도 있다.

원재료 값 인상은 외식비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소비자물가를 높였다. 이는 한편으로는 또 다른 소비자인 자영업자들에게도 직격탄이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전년 동월 대비 13.1% 올랐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3%대 초반으로 둔화했지만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 세부 품목 112개 중 잼·치즈·두유 등 31개는 상승률이 10%를 넘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정숙자(63)씨는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는 만큼 원재료 값 인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빚 300조 늘어

임대료 인상도 자영업자들의 숨통을 조인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전국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의 오피스와 모든 상가 유형의 임대료는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상승했다. 중대형 상가는 ㎡당 5만2200원으로 0.3% 올랐고 소규모 상가는 0.23% 오른 ㎡당 4만9000원을 기록했다. 임대가격지수도 올해 1분기 100.55를 기록하며 4분기 연속 상승세다. 엔데믹이 본격화한 올해 1분기 이후 공실률이 줄자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임대료·공공요금·인건비 등 나가는 돈이 많다 보니 자영업자들이 손에 쥐어지는 돈은 점점 줄었다.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2170만원에서 2020년 2049만원으로 매년 감소했다. 자영업자 증가폭이 가장 컸던 2021년에는 연소득이 1952만원을 기록하며 2000만원 선마저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소득감소 흐름은 벌이가 적은 영세 자영업자에게서 더 두드러져 잘되는 가게만 더 잘된다는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소득 상위 20%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7744만원에서 2021년 7308만원으로 5.6% 줄어든 반면, 소득 하위 20% 영세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186만원에서 84만원으로 55% 급감했다. 소득 상위 0.1% 자영업자의 연평균 소득은 같은 기간 16억2289만원에서 17억6592만원으로 오히려 8.8% 늘었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이후 영업 이익은 15.2% 감소했고 대출액이 1000조원을 넘어서는 등 한계상황에 몰려있다”며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별 차등 적용,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부담 경감 등을 요청했다. 추 부총리는 “내년 예산안 편성 때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를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지속하겠다”고 응답했다.

한국은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5명 중 1명에 달할 정도로 자영업 비중이 높다. 그렇기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전체 경제 인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현재 코로나, 내수경기 침체, 고금리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자영업자 금융부실이 늘어나면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어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중장기적인 정책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은 진입 장벽이 낮아서 준비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폐업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문적인 교육 컨설팅이 필요하고 대출의 경우도 컨설팅과 연계하여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백 경기도소상공인연합회장은 “코로나 이후로 570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의 빚이 300조가 늘었다”며 “소상공인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금리 부담을 낮추고 대출 거치 기간을 늘리는 등 정부와 금융기관의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전 6시까지 손님을 치른 수원의 김영민씨가 가스 밸브를 잠그고, 전깃불을 끈 뒤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평소보다 2시간 넘게 일했지만, 덕분에 우리 애 참고서라도 하나 더 사줄 돈이 생기잖아요.” 자영업자 가장의 책임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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