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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닭 ‘육’은 돼지 ‘초’는 볶음…중국요리 이름 몇 가지 규칙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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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24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알쏭달쏭 메뉴판 정복

‘사부들의 사부’라고 불리는 중식당 ‘진진’의 왕육성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부들의 사부’라고 불리는 중식당 ‘진진’의 왕육성 셰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50년 넘게 칼과 웍을 잡고 있다. 주방이 집이고 홀이 학교였다. 요리를 책이 아닌 몸으로 배웠다. 이제껏 현장에서 보고 듣고 익힌 내용을 아는 만큼만 말하고자 한다. 국내외 중식당에 갈 때 알아두면 유용한 얘기들이다. 우선 요리 이름 읽는 법부터 알아보자.

중국요리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다양한 기후대의 넓디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56개 민족의 음식문화가 제각각이다. 근래 들어 음식문화가 많이 바뀌기는 했다. 경제 규모가 팽창하고 교통이 편해지며 지역 음식이 활발하게 섞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름을 가진 요리도 많이 생긴다. 중식 요리사인 나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름을 보면 짐작이 간다. 작명의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한자를 읽을 수 있고 몇 가지 규칙만 알면 된다.

요리(料理)는 한국과 일본에서 쓰는 말이다. 중국에서 요리는 차이(菜)다. 채소와 반찬도 차이라고 하니 쓰임새가 넓다. 작은 식당의 간단한 차림표는 차이단(菜單·채단), 격식 있는 식당의 두툼한 차림표는 차이푸(菜譜·채보)라 한다. 대만 타이베이 어느 식당에서 차이단을 보니 이런 음식이 있다. 紅燒豬脚, 凉拌豆腐絲, 清蒸石斑魚. 국내 유명 호텔 메뉴판에는 古法佛跳墻이란 요리가 있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세대에게는 암호문과 다름없다.

스마트폰을 열어 번역 앱 ‘파파고’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한다. 紅燒香豬脚→돼지족발을훙사오, 凉拌豆腐絲→두부 무침, 清蒸石斑魚→우럭찜, 古法佛跳墻→고법불은 담을 뛰어넘는다. 나름 애는 썼는데 횡설수설이다. 두부 무침과 우럭 찜은 감이 오는데 다른 셋은 대체 뭔 말인지 알 수 없다.  번역 앱도 현장에서는 별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요리 이름 글자 수는 들쭉날쭉하지만 대체로 네 글자가 많다. 한자는 글자마다 제각각의 의미가 있어 네 자 정도면 웬만한 정보는 충분히 담을 수 있다. 운율에 맞춰 읽기도 쉽다. 네 자로 된 고사성어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요리 이름 네 글자 중 뒤에 있는 글자가 요리 재료·손질법이다. 마파두부(麻婆豆腐)는 사천 대표 요리 중 하나로 매콤해서 한국 사람들도 좋아한다. 뒤에 붙은 두부가 주재료. 홍소해삼(紅燒海蔘) 역시 뒤에 있는 해삼으로 만들었다.

‘진진’ 메뉴 중 하나인 ‘청증( 蒸)우럭’. 증(蒸)은 찜을 말하며, 산둥지역은 맑은 육수로 쪄 소금으로 간을 하고, 광둥 지역은 간장을 약간 넣고 찐다. 중국어로 ‘칭쩡’이라 읽는 청증은 맑은 찜을 뜻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진진’ 메뉴 중 하나인 ‘청증( 蒸)우럭’. 증(蒸)은 찜을 말하며, 산둥지역은 맑은 육수로 쪄 소금으로 간을 하고, 광둥 지역은 간장을 약간 넣고 찐다. 중국어로 ‘칭쩡’이라 읽는 청증은 맑은 찜을 뜻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앞에 붙은 글자는 보조재료, 조리법, 요리의 색 또는 맛을 나타낸다. 지역이나 사람 이름이 붙기도 한다. 마파두부 앞의 마파(麻婆)는 ‘곰보 아줌마’라는 뜻이다. 본래 요리 이름은 매우 맵다는 뜻인 마라(麻辣)두부였는데 청나라 때 쓰촨성 성도에 살던 손맛 기막힌 곰보 아줌마 덕에 이름이 바뀌었다. 홍소해삼(紅燒海蔘)은 해삼에 대파·간장·굴소스를 넣고 센 불에 볶아낸다. 소(燒)는 익혀 놓은 재료에 물과 양념을 더해 천천히 졸이는 방법이다. 간장을 쓰면 불그스레한 갈색이 나기에 홍(紅)이 붙었다. 색깔이 없거나 희미한 육수로 졸이면 백소(白燒)라고 한다. 초(炒)는 재료에 기름을 넣고 중간불로 뒤적이며 조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원칙에 따라 몇 가지 요리 이름을 풀어보자. 어향가자(魚香茄子)는 볶은 가지다. 어향은 사천 생선요리에 널리 쓰이는 양념이다. 고추·마늘·생강·간장·소금·파·설탕 등으로 만들어 이름과 달리 생선 냄새가 나지는 않는다. 그럼 어향육사(魚香肉絲)는 뭘까. 육사는 돼지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채 썬 것을 말한다. 오향장육(五香醬肉)은 간장에 팔각·회향·계피·산초·정향 같은 향신료를 넣고 졸인 돼지고기 장조림이다. 팔보채(八寶菜)는 해삼·전복·닭고기·죽순·목이버섯 같은 여덟 가지 귀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의미다. 하지만 5향이나 8보처럼 이름 앞에 붙은 숫자가 사용한 재료 가짓수를 뜻하진 않는다. 어감이 좋은 말을 붙였을 뿐. 들어가는 재료 종류와 숫자는 주인장 마음이다. 중국에는 18가지 재료를 넣는 오향장육도 있다.

깐풍(乾烹·건팽)은 바삭하게 튀긴다는 뜻이니 깐풍샤(乾烹蝦)는 새우튀김, 깐풍기(乾烹雞)는 닭튀김이다.  차림표에서 ‘기’로 끝나는 요리를 보면 닭고기 종류라 생각하면 된다. 원래 중국 표준어에서 계(鷄)는 ‘지’로 읽지만, 한국으로 건너와 중화요리를 퍼뜨린 초창기 화교들의 출신지인 칭다오, 웨이하이 일대에선  ‘기’로 발음한다. 어떤 재료는 중국 발음, 심지어 방언으로 적고 어떤 재료는 한국식 독음으로 적어 헷갈리지만 몇 가지만 알아두면 된다.

별도 수식어가 없으면 육(肉)은 돼지고기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쓰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라조육(辣椒肉)은 매운 고추를 넣어 볶은 돼지고기, 탕추러우(糖醋肉·탕수육)는 새콤달콤한(糖醋) 소스를 부은 돼지고기 튀김이다. 탕추루위(糖醋鱸魚)는 농어, 탕추리위(糖醋鯉魚)는 잉어요리다. 그러니 강즙대하(姜汁大蝦)는 생강소스(姜汁)로 만든 왕새우 냉채이고, 광동고압(廣東烤鴨)은 오리(鴨)를 천천히 구운(烤) 광둥 지역 요리임을 알 수 있다.

맨 앞에서 예로 든 요리의 정체를 밝혀보면 이렇다.

홍소저각(紅燒豬脚)→붉게 졸인 돼지족발, 양반두부사(凉拌豆腐絲)→채 썬 반건조두부 무침, 청증석반어(清蒸石斑魚)→통째로 쪄낸 석반어. 석반어는 바닷가 돌 틈에 사는 물고기를 통칭하며 종류가 수십 가지다. 다금바리와 우럭도 석반어 종류다. 고법불도장(古法佛跳墻)은 옛날 방식으로 만든 불도장이라는 뜻이다. 불도장에 얽힌 재미난 사연은 뒤에 전하겠다.

◆오늘의 총정리 중국요리 이름의 ‘앞은 조리법 또는 요리의 색, 뒤는 재료 설명’.

※정리: 안충기 기자

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중식당 ‘진진’ 주인장.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이다. 열일곱에 철가방부터 시작해 주방에 입성했다. 대관원·홍보석·호화대반점·도원을 거쳐 코리아나호텔 대상해의 오너 셰프가 됐다.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작은 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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