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 칼럼] 에너지 소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박지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박지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전기요금이 잇따라 오르며 물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오른 가스요금까지 더하면 4인 가구 기준 에너지 비용 지출이 월 7000원 안팎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 전력 소비가 많은 제조업계 지출이 커졌다. 이번 인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연간 전력사용료가 각각 1500억원, 700억원에 이를 것이란 보도도 있다.

소비자와 직접 마주해야 하는 상인들 걱정은 더 깊다. 인건비, 임대료에 전기요금까지 올라 문을 열 수록 손해인 곳도 많다. 일각에선 ‘개문냉방’ 영업을 하는 업주들을 나무라지만, 손님을 하나라도 더 붙들 수 있다면 과태료도 마다치 않겠다는 이들의 간절함마저 탓할 수는 없다.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 1인당 전력소비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상위권을 다툰다. 에너지 수입의존도 93%에 달하는 나라가 에너지요금은 38개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덕분에 독일, 일본보다도 전기를 더 쓴다. 수출 효자 종목인 조선, 반도체 등 산업 부문 전력소비량이 많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올림픽 나가는 선수들에게 쌀값 올랐으니 식사량 줄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낭비 요소와 전력 과소비 식단을 개선하는 일이 먼저다.

차라리 ‘전기가 싸다’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요금을 올려도 소비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모든 대책이 허사다. 정부도 지난달부터 ‘하루 1㎾h 줄이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실내 적정온도 26도(℃) 유지, 사용하지 않는 조명은 끄고, 플러그는 뽑아두기’. 생활 속에서 언제든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한 달 전력 소비를 10% 줄이고, 1년이면 10만원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곧 여름이다. 전력사용량이 가장 많은 계절이다. 외신들은 올여름 ‘슈퍼 엘니뇨’가 다시 찾아오며 지구촌 곳곳이 이상고온에 시달릴 것이란 예보를 쏟고 있다. 안정적인 전력예비율 확보를 위한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휴가철 관광객이 몰려오는 유럽 각국도 도심 유명 건축물 조명을 끄고, 정전 시범훈련까지 펼친다는 보도가 나온다. 에너지 절약은 당장의 위기를 다스릴 방편이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지혜이자 나눔이다.

필자도 경험했다. 퇴근길 아파트 승강기에 오르다 멀리서 다가오는 발걸음에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려 주었다. 모른 척 외면했다면 괜한 전기를 쓰며 두 번을 오르내렸을 터였다. 멈추니 보이는 것은 이웃의 환한 미소였다.

박지현 한국전기안전공사사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