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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를 유일하게 차버린 여성…프랑수아즈 질로 101세로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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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출신 예술가 프랑수아즈 질로가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1세. 그에겐 '파블로 피카소를 떠난 유일한 여성'이란 수식어가 오랫동안 붙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출신 예술가 프랑수아즈 질로가 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1세. 그에겐 '파블로 피카소를 떠난 유일한 여성'이란 수식어가 오랫동안 붙었다. AFP=연합뉴스

여성 편력이 심했던 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차버린 유일한 여성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그 자체로도 뛰어난 예술가였던 프랑수아즈 질로가 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101세. 뉴욕타임스(NYT)는 "피카소와의 낭만적인 관계 때문의 그의 예술 경력이 가려졌지만, 질로는 훌륭한 예술가였다"며 "피카소의 다른 연인들과는 달리 스스로 그 관계를 끝낸 인물"이라고 평했다. 질로는 심장·폐 질환을 앓다가 미국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질로는 노화로 왼쪽 시력을 잃은 90대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뜨면 잠옷과 슬리퍼를 착용한 채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 뉴욕 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 센터 등 전 세계 유수의 전시관에 소장돼있다. 지난 2021년 소더비 경매장에선 딸을 모델로 그린 작품 '기타를 든 팔로마(1965)'가 130만 달러(약 17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최고 훈장인 레지옹도뇌르를 수여했다.

파블로 피카소와 만났던 20대의 프랑수아즈 질로의 모습. 사진 질로 홈페이지

파블로 피카소와 만났던 20대의 프랑수아즈 질로의 모습. 사진 질로 홈페이지

질로는 오랜 세월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NYT에 따르면, 22세였던 질로는 우연히 파리의 한 식당에서 62세 피카소와 만났다. 피카소는 당시 연인이었던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 옆 식탁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질로를 발견한 피카소는 체리를 들고 다가왔고, 질로가 화가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스튜디오에 초대했다. 당시 피카소는 질로를 두고 "저렇게 (아름답게) 생긴 여자는 화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술을 매개로 친해진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질로는 피카소의 설득에 가족을 떠나 그와 10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영화감독 장 콕토, 화가 앙리 마티스 등과 함께 어울렸다. 마티스가 질로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하자, 피카소가 이를 질투해 먼저 그렸다는 '여인, 꽃(1946)'에 얽힌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 시기 질로도 피카소와는 다른 독창적인 추상 기법을 발전시켜 파리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었다.

1965년 질로가 책 『피카소와의 삶』을 펴낸 뒤 책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1965년 질로가 책 『피카소와의 삶』을 펴낸 뒤 책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두 사람은 슬하에 딸과 아들도 뒀지만, 결국 파국을 맞았다. 피카소가 자신도 잘 아는 지인이었던 주느비에브 라포르트와 만난 사실을 알게 된 질로는 이별을 결심했다. 이별을 고하자 피카소는 "나 같은 남자를 떠나는 여자는 없다"며 격분했다고 한다. 그는 불을 붙인 담배를 질로의 뺨에 갖다 대기도 했다. 당시 질로가 남겼다는 말은 유명하다. 그는 피카소에게 “나는 내 사랑의 노예이지, 당신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고 한다. 이후 질로는 "피카소는 내가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했겠지만, 나는 그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피카소가 파리 유명 갤러리들에 압력을 넣어 작품 활동을 못 하게 하자, 질로는 뉴욕으로 무대를 옮겼다. 이후 화가로서 승승장구했다. 64년엔 회고록 『피카소와의 삶』을 펴내 인세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당시 출판을 막으려고 소송까지 냈던 피카소는 모욕감·패배감을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질로와 낳은 자식들과도 관계를 끊었는데, 질로는 두 아이들이 피카소의 유산을 상속받도록 법정 싸움에 나서 승소하기도 했다.

프랑수아즈 질로가 그린 작품 '파도(1986·위)'와 초상화 '잠든 여인(1952)'. 사진 질로 홈페이지

프랑수아즈 질로가 그린 작품 '파도(1986·위)'와 초상화 '잠든 여인(1952)'. 사진 질로 홈페이지

질로는 피카소를 만나기 전에도 당찬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요구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영문학·철학·법학을 공부했다.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는 질로에게 남자아이 옷을 입히고, 고소공포증을 극복하라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40년대 프랑스가 독일·이탈리아군에 침공당하자, 질로는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단 생각에 아카데미 줄리안 미술학교에 진학했다.

질로는 피카소와 헤어진 뒤인 55년, 전 연인인 예술가 뤽 시몽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7년 뒤 이혼하고 미국 세균학자이자 소아마비 백신 연구원인 조너스 솔크와 재혼했다. 여러 남성과 사랑을 했지만, 자신을 그들 인생의 조연으로 정의하려는 시선과는 당당히 맞섰다. 그는 생전 잡지 미라벨라와의 인터뷰에서 "사자가 짝짓기를 하는 상대는 사자"며 "여성이라고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볼 필요가 없다"며 평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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