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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첫 주말…밤 9시, 문 연 소아과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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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백재욱 도봉구의사회 총무이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한 의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비대면진료 실행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백재욱 도봉구의사회 총무이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한 의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비대면진료 실행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이달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으나 일선 현장에서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비대면 진료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소아청소년과는 시범사업 시작 이후 사실상 진료가 불가능해졌고, 의료기관의 진료 거부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시범사업 첫 주말 야간, 문 연 소아과 ‘0’

시범사업이 시작된 첫 주말인 지난 4일 오후 9시. 한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 에 접속해 당장 연결되는 소아청소년과를 확인했다. 등록된 130여곳 소아과 가운데 당장 진료가 가능한 의원은 1곳도 없었다. 전부 ‘진료 종료’라는 안내창만 떴다. 일주일 전만 해도 밤 시간대에도 진료 가능으로 표시된 소아과가 10여곳에 달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1일부터 재진 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규정하면서, ‘소아과 대란’이나 의료 접근성 등을 고려해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는 야간·휴일에 한해 ‘의학적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처방 등은 안되지만 의사의 전문적인 의견은 들어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런 예외 조항에도 비대면 진료 이용이 어려워졌다. 비슷한 시각 앱의 실시간 무료상담 게시판에는 “90일 영아인데 발 뒤에 상처가 생겼다” “돌아이 땀띠가 심한데 어떤 약을 써야 하나” 등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앱 이용자가 많이 찾는 과목으로 표시되는 가정의학과·내과도 사정은 비슷했다. 의원 8곳만이 ‘진료 가능’이라는 불을 켜둔 상태였다. 이마저도 한 외과 의원은 ‘긴급 공지’라며 “시범사업 초·재진 환자 자격 제한으로 보험(급여) 진료는 불가능하다”라고 알렸다. 사후피임약과 같은 비급여 진료만 된다는 얘기다. 이날 야간 비대면 진료를 열어놨던 한 내과의 전문의는 중앙일보에 “시범사업안은 귀찮고 복잡하고 처벌을 각오해야해 결국 의사들이 비대면 진료를 외면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진료 거부·취소 50%…현장 우왕좌왕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불법으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으나 정부가 지난 5월 시범사업 전환을 결정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다만 초·재진 구분 없던 코로나19 때와 달리 시범사업에선 안전성 등을 고려해 ‘재진 원칙, 예외적 초진 허용’이라는 원칙이 만들어지면서 시행 초기 혼란이 불거지고 있다. 플랫폼 업계는 초·재진 환자 여부를 의료기관이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는 등 절차상 번거로움이 생긴 데 따른 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닥터나우 등 관련 스타트업이 모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에 따르면 자체 조사 결과 환자의 비대면 진료 요청이 의료기관으로부터 거부 또는 취소된 비율은 5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신영 닥터나우 홍보이사는 “하루 평균 취소율이 10~11%였던 점을 고려했을 때 시범사업 전보다 취소율이 5배 정도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원산협은 이날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시범사업 대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혼선이 빚어져 진료 요청하는 환자와 거부하는 의료기관 모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냈다.

시범사업 이틀 전인 지난달 30일 사업 최종안이나 의료기관용 지침이 나오면서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외적으로 초진이 가능한 섬·벽지 주민이나 거동 불편자, 감염병 확진자 등은 건강보험료 고지서, 장기요양등급 인정서 등을 의료기관에 내야 하는데, 서류 확인 절차에 대한 방법이나 개인정보 보호·보안에 대한 논의도 아직까진 없는 실정이다. 지난 1~4일 닥터나우에 접수된 의료기관 상담 건을 살펴보면 “예외적 초진 환자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선뜻 진료하기 두렵다”는 전남 목포 내과 전문의의 토로가 있었다. 같은 기간 닥터나우에 접수된 이 같은 의료기관 상담 건은 475건으로 파악됐다.

우왕좌왕하는 현장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환자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한 경기도 맘 카페에는 “대기가 너무 힘들어 소아과에 전화했더니 비대면 진료가 이제 안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의학적 상담이라는 절충안을 정부가 내놨지만,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담이라고 해도 사실상 진료라는 뜻”이라며 “약 처방은 불가한데 진료비가 청구되니 소비자 항의가 빗발쳐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 비대면 진료(의학적 상담)를 기피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현장에선 운영 방식에 대한 개선 촉구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도 과천의 한 내과 전문의는 “기존 비대면 진료에 익숙한 환자는 본인 인증이나 영상 통화에서 번거로움을 느끼고 의원 입장에서도 청구분에 대해 삭감이 가능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라며 “정부가 본인 확인을 정확히 할 수 있는 방안 등에 대한 해답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계도기간 3개월을 거쳐 현장 반응을 평가 후 안정적인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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