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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로 듣는 100년 전 ‘밀양아리랑’ 레코-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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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1925년 제작된 캐비닛 형태의 유성기에서 밀양아리랑이 흘러나왔다. 100년 전 SP판이 간직하고 있던 음악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노이즈와 함께 여가수의 구성진 가락이 한옥 형태의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문을 여닫아 음량을 조절하는 1920년대 유성기. 홍지유 기자

문을 여닫아 음량을 조절하는 1920년대 유성기. 홍지유 기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생전 처음으로 ‘녹음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공연에 가지 않아도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과 임방울이 부르는 춘향가를 들을 수 있게 된 그때 그 시절, 대중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레코-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와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이 공동 주최하는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린다. 국립국악원이 보유한 유성기, 유성기 음반, 당시 신문 기사, 앨범 홍보 자료, 가사집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유성기는 1877년 개발돼 1950년대까지 사용된 음악 재생 장치다. 사전적 의미는 ‘유성(留聲·머물러 있는 소리)을 재생하는 기계’지만 음악사적으로는 LP(Long Play)판의 전신인 SP (Standard Play)판을 재생하는 장비를 일컫는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중 ‘진양조’가 녹음된 희귀 음반도 전시 중이다. [사진 국립국악원]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중 ‘진양조’가 녹음된 희귀 음반도 전시 중이다. [사진 국립국악원]

레코드판 위에 바늘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SP나 LP나 똑같다. 다만 나중에 나온 LP판에는 SP보다 더 많은 노래가 들어가기 때문에 롱플레이(Long Play)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성기가 있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음악을 감상했고, 희귀품이자 사치품인 유성기를 갖춘 집은 자연스레 ‘뮤직 살롱’이 돼 ‘유성기집’이라 불렸다.

한국에 유성기가 들어온 것은 1900년 전후다. 유성기 전성기인 1930년대에는 1만장 넘게 팔리는 히트 앨범이 나오며 음악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그 중에는 명창 이화중선과 임방울의 판소리 앨범 등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도 SP 전성기인 1920~1930년대 음반들이다.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유성기 음반 중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거나 복각되지 않아 대중들이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명인·명창의 인기 음반 30여장을 엄선했다.

전시 공간 2층에서는 매일 오후 2시30분부터 20분 동안 1930년대·1950년대 민요를 유성기로 재생한다. 맞은편 오디오 룸에서는 국립국악원이 디지털 방식으로 복원한 61개 고(古)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 3층에서는 한국관광공사의 ‘강강술래’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등  옛 소리를 활용한 현대 예술가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다양한 연계 행사도 마련됐다. 이달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 배연형, JTBC ‘풍류대장’ 프로듀서 황교진,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의 강연과 소리꾼 이희문의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들의 가야금산조, 대금산조, 판소리 공연도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선보인다. 전시 관람은 무료. 전시 연계 행사는 아름지기 재단 예약 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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