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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사람들은 이렇게 음악 들었다…뮤직살롱 '유성기집'의 기록

중앙일보

입력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유성기의 나무 뚜껑을 올리고 SP판을 끼운 뒤 바늘을 맞추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노이즈와 함께 여가수의 구성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생전 처음으로 '녹음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공연에 가지 않아도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과 임방울이 부르는 춘향가를 들을 수 있게 된 그때 그 시절, 대중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레코-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중 '진양조' 가 녹음된 제비레코드사의 음반. 심상건이 가야금을 연주했다. 발매 기간이 짧아 매우 희귀하다. 사진 국립국악원

심상건류 가야금산조 중 '진양조' 가 녹음된 제비레코드사의 음반. 심상건이 가야금을 연주했다. 발매 기간이 짧아 매우 희귀하다. 사진 국립국악원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와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이 공동 주최하는 '유성기집, 우리 소리를 보다' 전시다. 지난달 26일 개막한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린다. 국립국악원이 보유한 유성기, 유성기 음반, 당시 신문 기사, 앨범 홍보 자료, 가사집 등이 일반에 공개된다.

146년 전 음악 플레이어 모습은?

유성기는 1877년 개발돼 1950년대까지 사용된 음악 재생 장치다. 사전적 의미는 '유성(留聲·머물러 있는 소리)을 재생하는 기계'지만 음악사적으로는 LP(Long Play)판의 전신인 SP(Standard Play)판을 재생하는 장비를 일컫는다.
레코드판 위에 바늘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음악을 재생하는 것은 SP나 LP나 똑같다. 다만 나중에 나온 LP판에는 SP보다 더 많은 노래가 들어가기 때문에 롱플레이(Long Play)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사람들은 유성기가 있는 집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음악을 감상했고, 희귀품이자 사치품인 유성기를 갖춘 집은 자연스레 '뮤직 살롱'이 돼 '유성기집'이라 불렸다.

유성기(오른쪽)와 유성기음반을 넣어 보관하던 상자. 서봉 허순구 선생(1903-1978)의 소장품이다. 사진 국립국악원

유성기(오른쪽)와 유성기음반을 넣어 보관하던 상자. 서봉 허순구 선생(1903-1978)의 소장품이다. 사진 국립국악원

한국에 유성기가 들어온 것은 1900년 전후다. 유성기 전성기인 1930년대에는 1만장 넘게 팔리는 히트곡이 나오며 음악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그 중에는 명창 이화중선과 임방울의 판소리 앨범 등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도 SP 전성기인 1920~1930년대 음반들이다. 국립국악원이 소장한 유성기 음반 중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거나 복각되지 않아 대중들이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명인·명창의 인기 음반 30여장을 엄선했다.

명창 임방울의 ‘수궁가’ 공연 사진. 1956년 11월 24일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개최한 공연 '국악감상의 밤: 수궁가'에서 명창 임방울이 노래하는 모습이다. 임방울은 특유의 절절한 창법으로 춘향가 '쑥대머리' 같은 슬픈 대목을 잘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 국립국악원

명창 임방울의 ‘수궁가’ 공연 사진. 1956년 11월 24일 국립국악원 연주실에서 개최한 공연 '국악감상의 밤: 수궁가'에서 명창 임방울이 노래하는 모습이다. 임방울은 특유의 절절한 창법으로 춘향가 '쑥대머리' 같은 슬픈 대목을 잘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사진 국립국악원

한옥 전시실에서 유성기 음반 감상해볼까

100년 전 나온 SP판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전시 공간 2층에 들어서자, 1925년 제작된 캐비닛 형태의 유성기에서 밀양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잔잔한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오는 구성진 가락이 한옥 형태의 전시실을 가득 채웠다.
전시 기간 중 오후 2시 30분부터 20분간 유성기로 재생하는 1930년대·1950년대 민요를 들을 수 있다. 맞은편 오디오 룸에서는 국립국악원이 디지털 방식으로 복원한 61개 고(古)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 명창 임방울과 이화중선이 부르는 춘향가도 담겼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열리는 '유성기집, 우리 소리를 보다' 2층 전시실에 놓인 1920년대 유성기. 캐비닛 형태로 앞쪽의 문을 여닫아 음량을 조절한다. 홍지유 기자

재단법인 아름지기에서 열리는 '유성기집, 우리 소리를 보다' 2층 전시실에 놓인 1920년대 유성기. 캐비닛 형태로 앞쪽의 문을 여닫아 음량을 조절한다. 홍지유 기자

3층에서는 옛 소리를 활용한 예술가의 음악을 소개한다. 국립국악원 소장 음원을 활용해 제작한 한국관광공사의 '강강술래'를 비롯해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와 전통음악 전수자 이희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서울 종로구)에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가 열렸다. 사진은 1층 전시실에 놓인 1920·1930년대 SP음반들. 사진 국립국악원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서울 종로구)에서 '유성기집, 소리를 보다' 전시가 열렸다. 사진은 1층 전시실에 놓인 1920·1930년대 SP음반들. 사진 국립국악원

다양한 연계 행사도 마련됐다. 이달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는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장 배연형, JTBC '풍류대장' 프로듀서 황교진, 국악음반박물관장 노재명의 강연과 소리꾼 이희문의 토크콘서트가 열린다. 오후 2시에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들의 가야금산조, 대금산조, 판소리 공연을 선보인다. 전시 관람은 무료. 전시 연계 행사는 아름지기 재단 예약 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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