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소연의 시인이 사랑한 단어

심보선, ‘인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소연 시인

김소연 시인

신체를 시의 주요한 모티브로 데려온 적 없는 시인은 없을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특징짓는 이목구비, 머리카락 같은 것은 너무 자주 사용해왔고 계속해서 새롭게 사용되어 화수분과도 같다. 누군가는 발뒤꿈치를 통해 고단한 노동의 시간을 담을 수 있고, 누군가는 손가락에 투사된 심리를 꺼낼 수 있다. 신체의 구석구석을 시에 데려와 우리의 감각을 환기하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정의하곤 한다.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태아에게 지혜를 전한 후 망각하고 태어나라는 뜻으로 인중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쉿 하는 천사가 등장하는 시가 있다. 심보선의 ‘인중을 긁적거리며’이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인중’을 시에서 처음 본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시인이 사용한 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 본 듯한 느낌처럼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이 놀라왔다. 우리의 신체에, 그것도 얼굴의 정중앙에 인중이 버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 오다가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세로로 폭 패인 자신의 인중이 무척이나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신경도 안 쓰는 것들을 이따금 시인은 처음처럼 우리 앞에 오롯하게 드러낸다. 시인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욕망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획득해 온 지혜를 전생의 것인 양 망각한 채로 무념이 살아가다, 불현듯 황망해질 때가 있다. 나의 망각이 어리석게도 지혜를 방치해두고 있었을 뿐 지혜는 나를 한 번도 떠난 적 없다는 듯이 내 앞에 한발 늦게 도착할 때가 있는 것이다. 반면, 내가 갈망하고 소원해온 어떤 것이 이미 눈앞에 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고 소스라치는 순간 또한 있다.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는 순간. 심보선은 이런 소스라침은 ‘홀로 깨달을 수 없다 /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에야 비로소 유의미해진다고 한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