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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장미꽃 속에 담긴 우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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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불을 때는 아궁이가 딸린 사랑채 옆에 작은 정원이 있는데, 거기 세워둔 아치에 8년 전 장미 네 그루를 심었다. 처음 몇 해는 꽃이 제법 잘 피어나더니 점점 세력이 약해져서, 작년 가을 가지치기를 할 때 제법 많이 잘라냈다. 세력이 약해진 식물은 응급처치로 이런 ‘강한 가지치기’를 해서 새순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올봄, 혹시 몰라 염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더 굵고 실한 초록 가지가 뻗고서 작년보다 더 큰 꽃을 피워내니 고마운 마음이 가득이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장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목록에 들어 있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은 시큰둥한 마음으로 구색이 필요해 정원에 넣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에 장미꽃이 활짝 열리면 ‘아, 역시 장미는 장미구나’ 싶어진다. 꽃이 예뻐서만은 아니다. 가지 끝에 매달리는 장미꽃 봉우리는 생각보다 작다. 그런데 그 호리병을 닮은 꽃봉오리가 일단 열리고 나면 순식간에 수많은 꽃잎이 엄청난 속도로 피어난다. 이 신비로움은 마치 우주의 빅뱅을 목격하는 듯하다. 그래서 매년 5월이면 피어난 장미꽃을 보며, 누구의 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장미 속 안에 담긴 우주’라는 말을 실감한다.

사실 요새 우주의 신비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다 보니 우주는 끝과 시작이 없어서 우리가 정의하는 크다, 작다, 멀다, 가깝다 등의 기준이 없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의 기준과 잣대가 생겨날 수 있는 건 오직 나의 존재가 거기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이다. 나로부터 가까운가, 나보다 작은가, 나보다 더 많은가 등등. 살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일들이 결국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라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지 않으려나 싶다.

장미만 예쁠까. 나의 정원에 피어난 모든 꽃은 다 예쁘다. 나의 정원에 내가 심은 모든 꽃처럼, 이 우주에서의 나의 존재도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어본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