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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이공계 신입생 10명 중 4명은 고교 수학 다시 가르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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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광장. 중앙포토

서울대 정문 광장. 중앙포토

올해 서울대 이공계·의약계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수학 성취도 시험에서 40%가 넘는 학생들이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학력 미달’ 성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서울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학 특별시험을 실시한 결과 응시 대상자 1624명 중 679명(41.8%)이 ‘기초수학’과 ‘미적분학의 첫걸음(미적분학)’ 수강 대상자로 분류됐다. 고급수학 대상자는 149명, 정규반 대상자는 796명이었다. 서울대는 2015학년부터 특별시험 성적으로 신입생을 네 개 반으로 나눠왔는데, 기초수학과 미적분학 수강 대상자는 고교 수학 교과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 학생들이다.

수학 이해도 ‘많이’ 부족한 신입생 23.6%…지난해보다 늘어

서울대는 수준에 맞는 수업을 수강 신청할 수 있도록 학부 신입생을 대상으로 매년 특별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수학 특별시험 성적(100점 만점)이 25점 이하인 신입생들은 미적분학, 26∼42점은 기초수학, 43∼76점은 정규반, 77점 이상은 고급수학 수강 대상자로 분류된다. 서울대 공지에 따르면 미적분학은 ‘수학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신입생에게 정규 수학 과목 수강 전 기초를 다져주기 위해 개설했다’고 돼 있는데, 올해 서울대 신입생 중 미적분학 수강 대상자는 23.6%(384명)로, 지난해보다 4.2%포인트 늘었다.

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건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학 기초 실력이 부족한 대학 신입생 비율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1학년도 신입생의 기초수학·미적분학 수강 대상자 비율은 26.0%였는데 올해 15.8%포인트 늘었다. 작년(30.3%)과 비교해도 11%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고교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학 학습 범위가 꾸준히 줄었고, 수학에서 미적분·기하가 선택과목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이 둘 중 하나만 배우고 대학에 입학해 기본적인 수학 수준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며 “학생들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점점 더 기초적인 고교 수학 내용을 수업 시간에 할애해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수학 학력 저하가 더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 후 수학 필수 학점·수업 시수가 지금보다 줄어드는데다가, 수학 심화 과목을 가르치지 않는 고교가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정부와 산업계가 강조하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등 전문 인력 양성의 기본은 수학”이라며 “고교 수학은 학습 부담을 이유로 줄이면서 전문 인력은 학부 4년 안에 더 키우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신입생 30% ‘글쓰기 능력’ 미달

한편 서울대 신입생의 글쓰기 능력도 점차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서울대 신입생 글쓰기 특별시험에서 총 응시생 831명 중 266명(32%)가 3단계 등급 중 가장 낮은 등급인 ‘Ⅰ수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보다 6%포인트가 늘었다. 서울대에 따르면 I수준은 ‘일관성이나 명료성이 낮고 주어진 자료를 피상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으며, 예상되는 반론을 고려하지 못하거나 반박의 설득력이 낮은 편’으로 평가된 글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진학담당 교사는 “책을 읽기보다 짧은 영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게 익숙한 세대”라며 “깊이 있는 분석이 담긴 글을 읽거나 논리적인 토론을 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글쓰기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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