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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높이려다 되레 신뢰 없앴다" 전문가들 입 모은 문제점 [들쑥날쑥 여론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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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12회 유권자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10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12회 유권자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부실 여론조사 난립으로 여론 왜곡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품질이 다각도로 제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지나치게 낮은 응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제언이다. 지난 16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응답률 개선책으로 성실 응답자에게 온라인 쿠폰(기프티콘)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28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응답률이 낮다는 것은 결국 특정 표본이 과잉 대표된다는 얘기”라며 “단순히 업계 자정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시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답률 제고 방안으로는 ‘최소 응답률 기준’ 도입이 거론된다. 한국정당학회는 2021년 여심위 의뢰로 ‘선거여론조사기준 개정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하며 “여론조사 응답률은 국제 기준과 비교하여 지나치게 낮다는 점에서 3%라는 공표·보도용 선거여론조사의 최소 응답률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무선전화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의무화하거나, 무선조사 60% 이상 시행을 권고조항으로 포함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통상 유선 전화 비율이 높을수록 노년층의 응답 확률이 높아져 보수층 여론이 더 많이 반영되는 것을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등록 때 ‘목표 표본수(할당표)’를 제출해야 하는 여심위 규제가 오히려 조사 결과 왜곡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정당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선거 여론조사 때 확률표본 추출 방식만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은 할당표본 추출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해 임의로 대상자를 선정하는 만큼 왜곡 가능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보고서는 “여심위 기준으로 인해 확률표집 방법을 사용하는 선거 여론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신뢰성 높은 조사를 위하여 만든 기준이 통계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방법을 원천 차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저가 수주 경쟁이 치열한 한국 여론조사 시장 상황도 통계적 가치가 더 큰 확률표본 방식을 쓰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본관 전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본관 전경

다만 이런 직접 규제보다, 간접 규제가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 교수는 “최소 응답률을 못 채우는 여론조사를 공표 금지했다가는, 요건 충족을 위해 인위적 조작이 이뤄질 수 있다”며 “여론조사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요구해, 품질 낮은 여론조사가 알아서 도태되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연장선에서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품질 등급제’ 도입 요구도 나온다. 이명진 교수는 “정부 기관이 아닌 중립적 정치 성향의 학회 등에서 품질이 높은 여론조사와 낮은 여론조사를 판별하는 등급제를 시행할 수 있게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심위 초대 위원장(2014년~2020년)을 역임한 김영원 숙명여대 통계학과 교수도 “법령으로 규제해도 결국 시중 업체들은 우회로를 찾아 나갈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응답률 같은 지표 하나만으로 무 자르듯 여론조사 공표를 제한하기보단, 설문 항목의 객관성 등 여타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회 차원에서 등급을 매기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 해외 주요국도 선거 여론조사를 법령으로 직접 규제하기보다는 관련 협회의 자율적인 규제를 따르는 식이다. 22일 국회입법조사처의 ‘선거여론조사 관련 규제 현황과 해외 입법례’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여론조사협회가 조사 자료수집 방법, 조사의뢰자 및 조사기관, 설문 문항, 모집단, 표본추출방법 등을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가 예외적으로 여론조사 규제를 법령을 통해 운영하지만, 이 역시 보도·공표 시 공개사항과 여론조사위원회에 제출 정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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