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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의여행스케치] 포르투갈-렐루 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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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렐루 서점 내부 카페 쪽에서 바라본 모습.

자정 무렵,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

"렐루 서점은 꼭 가봐. 네가 좋아할 거야."

대구요리 전문 식당에서 포르투 와인(포트 와인으로 알려진 포르투갈 와인) 잔을 비우며 안드레가 말했다. 스페인에서 알게 된 이 포르투갈 친구는 자기네 도시의 좋은 것들을 모조리 알려주고 싶은 듯, 눈빛 반짝이며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줬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구 맛에 푹 빠져 그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야, 이 대구 정말 맛있는걸. 와인도 좋고. 이것만으로도 포르투는 충분해."

포르투갈 사람들이 1년에 1인당 먹어치우는 대구의 양은 10㎏ 정도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동안 먹는 삼겹살이 1인당 5㎏ 정도라니 놀라운 양이다. 양념과 향료를 많이 사용하는 포르투칼 요리는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지중해식 음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웬만하면 가보지?"

안드레는 음식에만 넋이 팔린 내 귀에 대고 한번 더 못을 박았다.

다음날 가벼운 숙취와 함께 일어났다. 대서양의 바다 안개가 시내까지 밀려들어온 날이었다. 구시가 리스본 광장에 면한 서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얀 회벽으로 마감한 작은 2층 건물이었다.

서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다른 차원의 세상에 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책들이 사는 아늑한 보금자리처럼 느껴졌다. 아르데코풍의 세밀한 장식들이 오래된 고급 사교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제로 이곳은 1919년 지어질 당시 포르투 귀족들의 모임 장소로도 쓰였다고 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난간과 창살을 제외한 목재 장식 부분은 석회 문양 위에 나무 색을 입히는 식으로 해결했다는 점이다.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이미테이션이었다. 기묘하게 생긴 계단은 2층 서가로 이어졌다. 지붕의 유리 장식이 고풍스러웠다. 2층 한쪽에는 세 개의 탁자가 놓인 작은 카페가 있었다. 책들이 풍기는 잉크 냄새와 커피향은 참으로 잘 어울렸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작은 서점들의 존재다. 시장 논리에 따라 큰 서점들이 작은 서점을 흡수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유럽의 도시에선 작은 서점들이 제 몫을 다하며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0년 역사의 렐루 서점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비단 화려한 장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영욱 일러스트레이터.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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