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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동매매 줄어든 K미술시장, 거품 꺼지고 저변 확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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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18면

바뀌는 미술시장 판도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조형아트서울. [연합뉴스]

2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조형아트서울. [연합뉴스]

“(한국 미술시장의) 조정은 예상된 것이었고 이는 오히려 좋은, 심지어 건강한 신호다.” (하비에르 페레스, 한국 진출 독일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 대표)

“(분위기에 휩쓸려 사는) 뇌동매매가 확 줄었지만, 그렇다고 2007년 과열 후 무너졌던 것이 재현되는 양상은 아니다. 확실히 시장이 예전보다는 성숙해졌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

5월 4~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4월 12~1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화랑미술제 등 올해 상반기 주요 아트페어를 보며 전문가들이 내린 평이다. 25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조각에 초점을 맞춘 아트페어 조형아트서울이 개막했다. 시장의 조정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해 그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2007년 버블 때와 달리 시장 성숙해져

지난해 한국 미술시장은 화랑·경매·아트페어 총매출이 1조377억원에 이르러 사상 처음으로 1조원 시장이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2년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 그러나 세계적인 경기둔화가 이어지면서 2007년 미술시장 과열 후에 급랭과 침체를 겪었던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그때와는 다소 다른 양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1분기 경매 실적은 우려대로 좋지 않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국내 2대 미술경매사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올해 1~3월 메이저경매 실적을 취합한 데이터를 보면, 낙찰 총액은 약 2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58% 감소했으며, 총 판매 작품 수는 513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52% 줄었다. 두 경매사의 평균 낙찰률은 67.3%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82.6%보다 훨씬 낮다. 이러한 결과들은 2년 전인 2021년 1분기보다도 악화된 것이다.

“전반적으로 가격이 내려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김환기·윤형근·박서보·이우환 같은) 대형 작가들의 작품을 보유한 사람들이 시장에 잘 내놓지 않는다. 그래서도 경매 실적이 부진한 것”이라고 연구센터의 정 대표는 설명했다. 아트페어에도 이러한 대가들의 작품은 지난해에 비해 많이 나와 있지 않았다. 아트부산의 경우, 대신 젊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아트부산의 정석호 이사는 “올해에는 경기둔화에 따른 우려가 많았기 때문에 무리해서 해외 주요 갤러리를 유치하는 대신 신선하고 재미있는 갤러리를 많이 유치하자는 전략이었다”며 “그 결과 올해 참여한 34개의 해외 갤러리 중 19개가 아트부산에 첫 참가하는 갤러리였다”고 설명했다. 바지우(프랑스 파리), 라 카우사(스페인 마드리드), 바르트(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다양한 국가의 갤러리가 신규 참여했다.

아트부산은 지난해 746억 원 매출을 공개한 데 반해 올해에는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다. 참여 갤러리에 따라 결과에 대한 체감이 엇갈린다. 정 이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트부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젊은 컬렉터들과 신규 유입 컬렉터들은 국내외 가리지 않고 관심 갤러리 및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갤러리들 입장에서도 컬렉터들이 원하는 바에 좀더 잘 맞춰서 작품을 들고 나올 수 있다. 이러한 고객 취향에 잘 맞춘 갤러리들은 좋은 성과를 얻었다.”

“한국 시장, 미운 일곱살서 열살 된 듯”

지난 4~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연합뉴스]

지난 4~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연합뉴스]

아트부산을 통해 국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해외 갤러리 중에서 성공사례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 기반 갤러리 페레스 프로젝트는 2019년 처음 아트부산에 참가한 후 지난해 서울 신라호텔 내에 지점을 냈고,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삼청동으로 지점을 확장 이전했다.

갤러리 창립자인 하비에르 페레스 대표는 올해 아트부산에서의 판매 실적에 크게 만족한다면서 “한국 관람객은 새로운 것에 열린 마음,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감명적인데, 올해에도 그것이 증명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갤러리에 새로 합류한 덴마크 작가 안톤 무나르와 영국에서 주목 받는 젊은 작가 레베카 애크로이드 등이 아트부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미술시장의 거품 붕괴 우려에 관해서는 “2022년은 한국 미술시장에 매우 예외적인 한 해였기 때문에 2023년은 그에 비해 다소 둔화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서울은 미술시장이 다양한 컬렉터들로 구성되어 탄탄하고 미술관 전시가 활발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우리 갤러리의 아시아 시장을 위한 활동을 받쳐주기에 이상적인 장소”라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갤러리 공간에서 막 개관한 2개의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 이미 매진되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베를린 기반 갤러리 에프리미디스의 톰 우 디렉터는 “첫날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까지 갤러리에서 소개하는 모든 작가에 관한 문의와 판매가 꾸준히 이어져 한국 컬렉터 수준과 저변이 확대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 미술시장의 저변이 확대되었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효과가 해외 갤러리와 해외 젊은 작가들에게 집중되고 한국의 젊은 갤러리와 작가들에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아트부산 정 이사는 “국내 메이저 갤러리 학고재의 경우 퓨처 부스에서 선보인 박광수의 작품이 완판되었고 또 한국의 신생 갤러리 이아는 세실 렘버트의 작품을 거의 다 팔았다”며 한국의 젊은 작가들과 신생 갤러리들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한국미술감정연구센터의 정 대표는 “지난해에 반짝 유행했던 ‘코리안 팝’ 스타일의 작품들을 주로 들고 나간 갤러리들은 잘 안 된 것 같았다. 반면에 젊은 한국 작가 중에서도 이미 인지도에서 자리매김을 한 작가들의 작품 판매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대표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마디로 작가들도 정리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사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고 그러다 보니 안목도 높아지고 그에 따라 작가들의 입지가 갈린다. 뇌동매매가 대부분이던 2007년처럼은 안될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이 약효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미술시장이 당시에는 미운 일곱 살 수준이었다면 이제 열 살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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