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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송광사가 품고 있는 승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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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1호 31면

‘송광사 승경(勝景)_선방’. 2022년. ©안홍범

‘송광사 승경(勝景)_선방’. 2022년. ©안홍범

대청마루가 바다처럼 파랗다. 하늘빛을 담아 낼 정도로 윤을 내어도, 일렁이는 나이테들은 지우지 못했다. 마룻널이 너울대는 동안, 수직의 기둥들은 미동 없이 반듯하다. 송광사 스님들의 수행처인 선방, 800여 년 전 보조국사 지눌이 앉아서 입적한 설법전 마루다. 정과 동, 과거와 현재의 시간 가운데 고요히 가부좌를 튼 스님. 그림자가 수심(水深)을 재듯 깊이 드리워져 있다.

사진가 안홍범이 찍은, 송광사의 찰나다.

안홍범은 아직도 회자되는 월간지 ‘샘이깊은물’ 사진부장을 지내던 때부터 이 땅의 서정과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 사진가로 손꼽혀 왔다.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송광사가 안홍범에게 자신을 기록할 수 있도록 사문(寺門)을 엶으로써, 한 사진작가가 송광사의 일상과 사계절을 수년에 걸쳐 촬영하는 귀한 작업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 결과로 ‘송광사 승경(勝景)’을 얻었다.

“이미 송광사가 품고 있던 풍경에, 셔터만 눌렀을 뿐입니다”라고 겸양되이 말하지만, 수십 점의 ‘송광사 승경’을 얻기까지는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천천히, 어느 시간에 선방의 대청마루가 하늘빛을 받아 파랗게 변하는지, 일주문 앞 노송들이 새벽안개에 감싸이는지, 첩첩한 기와지붕 사이에서 홍매화가 언제 가장 붉게 타오르는지를 살폈다. 스님들이 몇 시에 대웅보전에서 나와 안행(雁行·기러기처럼 줄을 이루어 걷는 것)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는지, 새벽예불을 나가는 방장스님과 공양간을 향해가는 행자의 동선을 뒤따랐다. 맞은편 산의 통신탑에 올라가서 원경의 송광사를 바라보기도 하고, 장군봉과 연화봉을 아우르는 송광사 터를 드론을 사용해 하늘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몇 번의 봄과 겨울이 지났고, 이제 송광사에서는 스님들의 법명처럼 ‘작가님’이 사진가 안홍범의 호칭으로 친근히 쓰인다.

안홍범은 오래 품고 있었으나 가뭇없이 흘러가는 송광사의 빼어난 경치를, 한국 불교의 역사 속에 우리들의 삶 속에 머물게 했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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