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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 정규 교사와 같이 볼 수는 없어"…'임금 차별 소송' 2심서 반쪽 승소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8년 9월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간제 교사의 호봉 승급 차별 폐지 진정 및 차별시정 권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9월 전국기간제교사노동조합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간제 교사의 호봉 승급 차별 폐지 진정 및 차별시정 권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간제 교사들에게도 정규 교사와 같은 호봉 승급 규정이나 정근 수당 산정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2심에서 뒤집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 교사들과의 임금 차별을 주장하며 정부와 서울교육청, 경기교육청을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다. 서울고법 민사38-2부(부장 박순영·민지현·정경근)는 1심과 달리 “기간제 교사들에게 적용되는 호봉 승급 제한 규정이나 정근 수당 산정 방식에는 문제가 없다”고 26일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들에게도 가족수당을 포함해 퇴직금을 산정해야 한다"며 교사들의 일부 청구만을 받아들였다.

 지난 2019년 기간제 교사 25명은 “정규 교사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호봉승급, 정근수당, 퇴직금, 상여금, 맞춤형 복지제도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며 임금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대통령령인 ‘공무원보수규정 제5조 [별표11]’에 규정된 봉급표 비고란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들은 재계약을 맺거나 학교를 옮겨 새로 계약할 때만 호봉이 승급된다. 1년마다 자동으로 호봉이 오르는 정규교사와는 다른 점이다. 1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에게 기본급여 외에 연 2회 지급되는 ‘정근수당’ 역시 기간제 교사들은 일부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긴다. 근무 학교가 바뀐 경우 정규 교사들은 전 학교에서 근무한 기간도 산입되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현재 임용 학교의 계약 기간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문제가 제기된 뒤 대부분의 교육청은 정근수당 지급방침을 바꿨지만, 전국에서 기간제 교사가 가장 많은 경기교육청의 경우 이 같은 방식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호봉 승급 제한 규정과 정근 수당 산정 방식, 퇴직금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들 주장을 받아들였다. 기간제 교사를 교육공무원법상 교육공무원으로 해석해 정규 교사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교사 자격을 소지하고 있고, 정규 교사와 동일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며 “단지 임용고시 합격 여부만으로 기간제 교사와 정규 교사 사이에 교사로서의 능력과 자질의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호봉 승급 제한 규정을 위법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시정하지 않은 정부 책임을 인정해 피해를 본 교사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정근 수당 역시 각 교육청이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퇴직금을 산정할 때 가족수당을 평균임금에 포함하지 않은 채 계산한 점도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성과상여금을 지급할 때 기준으로 삼는 호봉이 정규 교사와 다른 것, 가족에 대한 복지점수가 배정되지 않는 것은 차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들의 지위를 다르게 판단해 1심 판결을 대거 뒤집었다. “교육공무원법상 특수한 성격을 가지는 교사라 정규 교사와 다른 처우를 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과거 헌법재판소 결정례를 인용하며 “헌법에서 말하는 ‘차별적 처우’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며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경우에는 차별 자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이 전제에 따라 1심 재판부가 위법하다고 본 호봉 승급 제한 규정에 대해서도 다른 판단이 가능해졌다. 2심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는 연속적인 근로 제공에 따라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임용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호봉이 새로 획정되는 지위에 있다”며 별도 규정을 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 교사와는 달리 학교장과 채용계약을 맺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근수당에 대해서도 “장기근속 및 업무 능력 향상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라며 “단기간 근무가 예정된 기간제 교사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기간제 교사들의 청구는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인용됐다. 공무원수당규정에 따라 지급되는 가족수당을 평균임금에 넣어 퇴직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에 대해 가족수당을 지급하지 말라고 본 규정이 없다”면서 교육청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문에 ‘추가 논의의 필요성’이라는 단서를 달아 정부와 지자체에 과제를 남겼다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하지만, 기간제 교사와 정규 교사 사이 처우의 차이를 두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밝힌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의 태생적인 지위를 고려하면 차별적인 처우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기간제 교사의 업무 비중이 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정책적으로 처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기간제 교사는 정규 교사의 일시적인 결원을 대체하기 위해 마련된 예외적인 제도라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임용돼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간제 교사들이 수행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 제도 취지에 맞지 않게 운용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기간제 교사들이 정규 교사들이 기피하는 담임, 학생부, 학교폭력 등의 업무를 떠안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가와 지자체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연구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영진 전교조 서울지부 기간제교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기간제 교사들이 한 학교에서 연속해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2심 판결대로라면 실질적인 차별을 계속해서 받을 수 밖에 없다"며 "기간제 교사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정규 교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본 1심 재판부의 판단이 현실과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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