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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그녀의 청혼 “아르헨 갈래? 소고기 먹으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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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년째 신혼여행 ②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국토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초원 지대 ‘팜파스’. 초록색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평원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사람보다 세 배 많은 소가 자란다.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싸고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르헨티나 국토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초원 지대 ‘팜파스’. 초록색과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평원에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 드넓은 초원에서 사람보다 세 배 많은 소가 자란다.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싸고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난 뒤, 소고기에 대한 우리 부부의 관점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세계 넘버원 소고기는 아르헨티나 소고기란 사실 말이다. 소고기 싫어하는 이들이라면 이 글은 이쯤에서 접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탄수화물보다 소고기를 먹을 때 조금 더 상냥해지는 당신이라면 지금 당장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해야 할 것이다.

아내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

나는 감히 남미여행의 꽃은 부에노스아이레스라고 말하고 싶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한국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의 수도다. 지구본에서 한국을 찾아 그대로 긴 송곳으로 관통시키면 이 도시 앞바다 어디쯤이 나온다. 비행만 하루 넘게 걸리는 이 먼 곳까지 간다면, 남미를 구석구석 돌고 싶은 당신의 욕심은 절대 과한 게 아니다. 페루 마추픽추, 칠레 파타고니아,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브라질 이구아수 폭포.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대자연을 두어 달에 걸쳐 돌고 나면 어딘가 짐을 풀고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질 것이다.

모름지기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그때가 바로 아르헨티나에 도착할 시간이다. 남미 대륙을 한 바퀴 돈 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남미 여행을 가장 알차게 하는 방법일 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탱고 공연을 놓치질 마시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탱고 공연을 놓치질 마시길.

남미여행은 무조건 체력과 시간이다. 비용은 나중 문제다. 그러니 시간이 넘치고 체력이 남아 있다면 눈 딱 감고 지금 당장 남미행 티켓을 사시라. 당신이 평생 먹어보지 못한 그 소고기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르헨티나는 국토의 4분의 1이 거대한 초원이다. 이 땅에서 국민 1인당 약 세 마리의 소가 길러진다. 그야말로 소고기 천국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고기를 먹으러 지구 반대편까지 갔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많이 산다. 이들의 음식 문화와 아르헨티나 식재료가 만나 최상의 맛을 낸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많이 산다. 이들의 음식 문화와 아르헨티나 식재료가 만나 최상의 맛을 낸다.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살 때 기준은 딱 한 가지였다. 한우보다 저렴할 것. 하지만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1㎏에 단돈 10달러. 저렴한 부위 가격이 아니라 질 좋은 등심, 안심이 그렇다. 지금은 물가가 많이 올라 이 정도이고 우리가 여행할 때는 더 쌌다. 가성비만 놓고 봐도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흠잡을 데 없는데, 맛도 기가 막히다. 전 재산 쪼개 가며 다니는 세계여행이어도 소고기로 사치를 부릴 수 있는 동네다.

결혼하기 전,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같이 가줄 사람을 물색하러 다녔다. 혼자 가기엔 치안 상황이 두려웠고 언어에 자신감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1인분에 1㎏이 나온다는 스테이크를 혼자 먹을 자신이 없었다. “무슨 소고기를 먹으러 아르헨티나까지 가느냐”며 모두가 면박 줄 때 종민만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결혼도 하고 세계여행도 떠날 수 있었다. 부부는 정말 이상한 사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서로 장단이 맞아 실현을 가능케 하고, 또 반대로 무참하게 서로의 의견을 짓뭉개기도 하니 말이다.

남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건물의 종이 주소판. 구리 주소판을 훔쳐가는 도둑이 많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건물의 종이 주소판. 구리 주소판을 훔쳐가는 도둑이 많다.

남미 여행의 첫 시작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이어야 한다.

직항편도 없고 한국과 가장 먼 곳을 출발점으로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부터 우유 두 통을 찾게 되는 얼얼한 마라 맛 여행보다는 순한 맛으로 시작해 조금씩 매운맛을 높여 나가는 게 좋지 않겠나. 남미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하드코어한 여행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그중 순한 맛,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을 해보자는 거다.

이 동네 사건·사고는 다른 남미 지역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도착 첫날, 숙소 주인 내외가 집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 친절한 사람들이군’ 하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현관 인터폰을 도둑맞아 어쩔 수 없이 마중 나왔다고 했다. 며칠 뒤에는 구리로 만든 현관문 손잡이 자리가 훤히 비어 있었다. 고철로 팔면 돈이 좀 되니 누군가 밤새 훔쳐 간 것이다. 무언가 도둑맞는 건 남미에서는 흔한 일이다. 볼리비아 장거리 버스에서는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 가방 속에 넣어 뒀던 카메라를 털리기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자 사이에서 빠지지 않는 무용담이 있다. 은행보다 두세 배 높은 암시장 환율은 환전상 거리로 여행자를 꼬여낸다. ‘길 한복판이니 설마…’ 하고 환전을 하다가 100달러가 1달러로 변하는 ‘밑장 빼기’를 당한 여행자가 한둘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남미 여행에서 이 정도는 순한 맛이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넘고 나면 앞으로의 모든 사건을 ‘아! 여긴 남미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될 테니 괜찮은 출발점이란 거다.

이런 부에노스아이레스이지만, 우리 부부는 다시 갈 날을 기대한다. 오래전 누군가는 이 도시를 ‘파리와 마드리드와 브뤼셀을 섞어 놓은 듯하다’고 했다. 국가 경제력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때 지은 유럽식 건물이 많고, 다른 남미와 달리 인구 중 유럽 이민자가 주를 이룬다. 이 도시 곳곳은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지하철은 차장이 손잡이를 돌려 직접 문을 열어주고, 가끔은 나무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탈 수도 있다. 이것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다.

아르헨티나의 자랑 소고기 스테이크.

아르헨티나의 자랑 소고기 스테이크.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배고픈 여행자도 와인과 소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도시다. 대초원에서 행복하게 살아서인지 육질이 참 부드러웠다. 국거리인 줄 알았던 양지고기를 구워도 질기지 않았다. 그러나 먹을수록 한우가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가? 향수병인가 했는데 고기를 씹다 보니 다른 이유란 걸 알았다. 식감만큼은 최절정인데 마블링이 빠졌다. 응당 고기라면 기름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너무 건강했다. 하지만 먹다 보면 나도 건강해질 듯해서 열심히 먹었다.

김은덕, 백종민

김은덕, 백종민

소고기를 먹을 때마다 은덕을 추궁했다. 그때 “아르헨티나로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게 프러포즈였음을 이젠 인정하라고. 아무에게나 고기를 먹으러 지구 반대편까지 가자고 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는가! 소고기 이야기는 핑계일 뿐, 나랑 지구 끝에 가고 싶었던 거라 믿고 산다. 후회 없는 착각이다.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달 살기 정보

◎ 비행시간 환승편만 존재. 최소 26시간 이상(비행시간이 길고 티켓 가격이 비싼 만큼 ‘2개월 남미 일주 + 1개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달 살기’ 또는‘1개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달 살기 + 2개월 남미 일주’ 추천)
◎ 날씨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여름은 무덥고 겨울에 매섭게 추운 건 똑같음)
◎ 언어 스페인어(떠나기 전 스페인어 공부 필수. 특히 소고기 부위별 단어 외워 둘 것)
◎ 물가 수입에 의존하는 공산품은 매우 비싸지만, 농수산물은 매우 저렴함
◎ 숙소 월 500달러면 도시 외곽 지역에서 원룸형 아파트 빌릴 수 있음(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으로 고를 것. 달러가 귀한 나라이니 예약 전 가격 협상 필요)

※물가 및 숙소 가격 2023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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