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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누리호 3차 성공, 이제 첫 발 뗀 한국 민간 우주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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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정부 관계자들이 충남 아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산사업장을 찾아 한국형 발사체 사업 등 관련 시설을 둘러봤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정부 관계자들이 충남 아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아산사업장을 찾아 한국형 발사체 사업 등 관련 시설을 둘러봤다. [연합뉴스]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내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의 발사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사통제동 1층 나로우주센터 발사지휘센터(MDC). 나로호 발사장 곳곳을 비추는 초대형 멀티스크린이 설치된 공간에 25일 ‘민간인’ 두 명이 등장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유동완 수석부사장과 발사체 담당인 이준원 상무였다. 이들은 이날 낮 12시 발사운용 작업이 시작된 시점부터 누리호 발사 이후 궤도 안착까지 전 과정을 고정환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누리호고도화사업단장 등과 함께 지켜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번 3차 발사를 포함한 누리호고도화사업의 체계종합을 맡게 되게 된 덕분이다. MDC는 우주발사체 관계자 외에는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이다. 2021년 10월 1차 발사와 지난해 6월 2차 발사 땐 항우연 핵심 인력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를 사이에 둔 MDC 건너편 발사체통제센터(LCC)에도 전에 없던 민간인들이 9명이나 등장했다. 모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술진들이었다. LCC는 연구원들이 MDC의 결정에 따라 발사 작업을 진행하는 곳으로, 역시 ‘관계자 외에 출입금지’구역이다. 한화는 이번 3차 발사에서 참관에 그쳤지만 2025년 4차부터 마지막인 2027년 6차 발사까진 명실상부한 체계종합기업으로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을 이끌게 된다.

대한민국에도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을까. 이번 누리호 3차 발사의 가장 큰 의미는 ‘우주발사체 기술의 민간 이양’이다. 정부는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의 목표를 ‘한국형발사체의 반복 발사 및 민간 기술 이전을 통해 발사체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국내 발사체 산업 생태계를 육성ㆍ발전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 등이 항공우주국(NASA)의 기술을 이전 받으면서 민간 우주시대를 연 것처럼, 한국도 나로호와 누리호를 개발해온 정부 출연연구소 항우연의 기술을 민간이 이전 받는 시대가 된 셈이다.

한화에어로, 순천에 500억 투자해 우주발사체 단조립장 설립   (서울=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월 약 5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순천에 2만3140㎡(약 7000평) 규모의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전남 순천에 설립할 예정인 '발사체 단조립장' 내부 조감도. [연합뉴스]

한화에어로, 순천에 500억 투자해 우주발사체 단조립장 설립 (서울=연합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월 약 5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순천에 2만3140㎡(약 7000평) 규모의 우주발사체 단조립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전남 순천에 설립할 예정인 '발사체 단조립장' 내부 조감도. [연합뉴스]

하지만, 누리호 고도화사업 성공이 곧바로 한국 민간 주도 우주산업 시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항공우주학계 전문가들은 이번 3차 발사 성공으로, 우주발사체와 인공위성을 제작ㆍ발사할 수 있는 나라라는 뜻의 ‘스페이스 클럽’(Space Club)의 지위를 굳혔지만 한국 우주발사체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진단한다. 발사 성공률은 제쳐놓고라도, ㎏당 발사비용에서 선두주자와 간격이 크기 때문이다. 누리호의 발사비용이 ㎏당 3만 달러인데,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 팰컨9은 ㎏당 2000달러에 불과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한국의 우주발사체 기술 수준은 최선진국인 미국의 60% 수준인 것으로 진단된다.
정세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상무는 “한화는 단기적으로 우주분야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누리호 고도화사업과 곧 시작할 100t 엔진을 만드는 차세대발사체 사업을 통해 기술을 제대로 익힌 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성을 갖춘 플레이어로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연말까지 설립하겠다고 공언한 우주항공청도 출범에 난항이 예상된다. 전담 정부기구 구성이 늦어지면, 민간으로 기술 이전과 관련 산업 육성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입법예고한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까지 만들어 준비를 해오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우주항공청은 과기정통부 산하 외청 형태로 꾸려진다. 하지만 조승래 민주당 의원은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항공청이 아닌 국가우주위원회 산하에 국가우주전략본부를 신설해 범부처 정책을 총괄ㆍ조정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의했다. 이외에도 3건의 우주항공청 관련 법안이 추가로 제기되고 있어, 여야는 물론 행정부와도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형국이다. 향후 설립될 우주항공청은 남은 누리호 고도화사업뿐 아니라 차세대발사체 개발 등 계획된 대부분의 우주 관련 계획을 총괄하게 된다.

ITAR

희망의 조짐도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을 계기로 그간 한국의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를 막고 있던 미국의 국제 무기거래규정(ITAR)이 풀리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ITAR 제도 하에선 한국이 독자적으로 우주발사체 기술을 상용화 수준까지 끌어올리더라도 스페이스X처럼 상용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를 할 수 없었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운반할 수 있는 로켓과 관련 장비ㆍ기술의 확산을 통제하기 위해 ITAR를 운영하면서 전략부품과 기술의 반출을 막고 있다. 미국이 인공위성 관련 수많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미국 기술을 피해 상용 인공위성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조선학 과기정통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한국도 이제는 미국의 ITAR 심사 때 건별 검토를 통해 수출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향후 개발 예정인 위성들을 고려해 미국의 개정 정책이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협의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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