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벌레떼 안방서 후두둑…15년새 전국 퍼진 외래종의 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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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혹파리 사체. 사진 독자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혹파리 사체. 사진 독자

인천 송도의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윤 모 씨(31)는 최근 2주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뒤 집안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안방과 신발장 등 곳곳에 혹파리 사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때부터 윤 씨는 끊임없이 나오는 혹파리와 전쟁을 벌여야 했다. 그는 “자기 전에 핸드폰을 켜면 파리가 핸드폰을 향해 달려들고, 코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 수면에 지장이 생겼다”며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멀쩡한 집 놔두고 월셋집이라도 구해야 하나 심란하다”고 말했다.

혹파리의 습격에 고통받는 건 윤 씨만이 아니다. 올해 2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 단지에는 지난달 중순부터 혹파리 사체가 무더기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주민은 “붙박이장의 옷들은 유충 천지고, 이불 세탁도 다 다시 해야 한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이나 부모님 댁으로 이동한 가구도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의 아파트에서도 혹파리 떼가 나타났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해충 방제업체 대표인 임창호(43) 씨는 “최근 송도뿐만 아니라 시흥, 부산 등 전국적으로 (혹파리 신고가) 접수된 사례가 14곳”이라며 “이야기가 나갈까 봐 다들 불안해하는 상태라 쉬쉬하며 건설사 대응을 기다리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보면 송도만큼 심각한 상황인 곳이 많다”고 했다.

이 작은 날벌레의 정체는 외래종인 나무곰팡이 혹파리다. 새로 지은 아파트 내부에서 주로 발견돼 아파트 혹파리로도 불린다. 2008년 송도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봄철마다 간헐적으로 피해 사례가 나타나다가 15년 만에 전국적으로 대량 발생한 것이다. 혹파리는 사람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크기가 4㎜ 정도로 작아서 음식물이나 호흡기를 통해 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①유입 - 가구 안에서 증식 

가구 내부에서 발견된 아파트 혹파리. 배연재 교수

가구 내부에서 발견된 아파트 혹파리. 배연재 교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어떻게 외래종 혹파리가 신축 아파트 내부에서 대량으로 살고 있는가였다. 2008년 첫 발견 이후 진행된 조사 결과, 붙박이장의 파티클 보드(나무를 잘게 부순 뒤 접착제를 섞어 합판 모양으로 만든 목재) 내부에서 혹파리가 증식하는 게 확인됐다. 혹파리가 가구 내부의 곰팡이를 먹으면서 서식하다가 성충이 되면 틈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아파트 혹파리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종으로 중국 등을 거쳐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확한 유입 경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배연재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목재 수입처인 동남아까지 갔지만 결국 기원지를 찾지 못했다”며 “인도에서 출연한 종이 국내에 어떻게 와서 자생하는지 앞으로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②확산 - 전국 해안가 아파트 중심으로 번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아파트 혹파리는 2008년에 송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아파트 단지를 연결고리로 점차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2011년 경기도 파주·남양주시에 이어 2014~2015년에는 전남(여수)과 경남(거제)에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대부분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발생하다 보니 건설사와 주민 모두 외부 노출을 꺼렸다. 혹파리 유입 원인을 조사한 첫 보고서 역시 업체 측의 요청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해안가 도시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혹파리 피해 사례가 점차 늘었다. 곰팡이가 서식하기 유리한 고온다습한 환경이 조성되는 등 점차 아열대화되는 기후도 혹파리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해충 방역 전문가인 전문식 씨는 “여름철 장마가 길었던 다음 해에 혹파리 피해가 극대화되는 패턴이 나타났다”며 “특히 바다 인근의 습도가 높은 곳이 혹파리 발생 빈도가 높았다”고 했다.

③정착 - 온난화로 생존·적응 용이해져

왼쪽부터 아파트 혹파리 애벌레와 번데기, 성충. 배연재 교수

왼쪽부터 아파트 혹파리 애벌레와 번데기, 성충. 배연재 교수

외래종 혹파리가 신축 아파트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15년 동안 생존하면서 국내에 정착할 수 있었는지도 밝혀내야 할 과제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아파트 혹파리는) 10년 동안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역에 성공적으로 침입했음을 입증하는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라고 밝혔다. 새끼(유충)가 새끼를 낳는 등 독특한 번식 방법(유생생식)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서도 생존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렇게 생존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전문 방역업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기후가 점차 따뜻해지면서 외래종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세계화로 무역과 여행 등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외래종 유입이 더욱 가속화된 상황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침입한 외래종이 새 서식지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게 용이해졌다는 뜻이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주택에서 발견된 외래종 흰개미 역시 고온 지역에 주로 서식하는 종이다. 정부는 여왕 흰개미를 포함해 총 253마리를 박멸했으며, 흰개미가 주변으로 확산한 흔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외래 곤충이 국내에 유입되거나 대발생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며 “이집트숲모기 등 병원균을 옮기는 외래종이 국내에 유입되면 심각한 보건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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