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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文정부 '연동제' 무시…한전·가스공 9.5조 손실 쌓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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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주택가의 전기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주택가의 전기 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말기 전기·가스요금 인상 필요성이 있었는데도 올리지 않은 데 따른 손실이 9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료비 변화를 요금에 반영하는 연동제 등이 정치 논리에 밀려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24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문 정부 말기 연료비 연동제를 사실상 활용하지 못했다. 2020년 12월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는 LNG(액화천연가스) 등 전기 생산에 들어간 연료비 가격의 변동분을 고려해 분기마다 ㎾h당 ±5원(지난해 2분기까진 ±3원) 범위로 전기료에 반영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2021년 1분기부터 대선 직후인 지난해 2분기까지 요금 인상 지연에 따른 한전 손실분은 5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동제가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이 유보된 데 따른 손실이 2조6000억원, 기준연료비 인상분 회수가 늦어진 손실이 2조7000억원이다. 2021~2022년 한전 누적 적자액(38조4000억원)의 13.8%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한전에서 요청한 연료비 조정단가를 4차례 유보한 영향이 크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한 2021년 말과 22년 초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름세를 보였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대선 즈음이던 지난해 1·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3원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결론은 '0원'이었다. 정부가 바뀐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네 분기 연속으로 최대 인상 폭인 5원 올린 것과 대비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천연가스 가격 등이 러·우 전쟁 전부터 올랐는데 선거를 앞둔 문 정부가 '가격 인상'이란 민감한 숙제를 다음 정부에 넘겨버렸다"면서 "전기·가스료 결정은 시장 원리에 맡기면 되는데,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탓에 요금 현실화·에너지 절약 등이 지금껏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공사도 2021년 1월부터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3월까지 요금 인상을 제때 반영하지 않은 추가 미수금이 4조2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1분기까지 쌓인 누적 미수금(11조6000억원)의 36.2% 수준이다. 미수금은 천연가스 수입 대금 중 가스 요금으로 회수되지 않은 금액으로, 그만큼 가스공사의 경영 부담이 악화했다는 뜻이다.

민수용(주택·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은 대개 격월로 원료비 변화를 고려해 연동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가스공사는 2021년 3월부터 1년간 8차례에 걸쳐 요금 인상 요청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인상분을 단가에 전혀 적용하지 않았다. 2021년 5~6월엔 요금을 올려달란 요청이 있었지만, 되레 2.9% 인하한 단가로 확정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전 정부부터 이어진 요금 인상 지연의 후폭풍은 한전·가스공사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 공기업의 빚은 빠르게 불어난다. 2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전 부채는 192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47조원 늘었다. 가스공사 부채도 52조원으로 같은 기간 17조5000억원 급증했다.

천문학적 손실을 메우기 위해 전기·가스료가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손실 해소까진 먼 길이다. 지난해 한 해 동안 32조6000억원의 적자를 낸 한전은 올 1분기에도 6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이 추가됐다. 경영 개선 압박에 한전(25조7000억원)·가스공사(15조4000억원)를 합쳐 41조원 규모의 추가 자구책도 꺼냈다. 또한 6500여개 한전 협력업체를 비롯한 전력 생태계가 고사 위기에 놓이고, 한전채 발행이 늘면서 채권 시장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다.

한무경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전기·가스료 인상을 제때 했더라면 갑작스러운 요금 폭탄 청구서가 날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 책임을 국민이 떠안은 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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