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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조종 걸리는 게 바보? 올해 달랑 2건 적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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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라덕연 주가조작 사건’을 계기로, 금융당국이 최근 10년간 거래 및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3400개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금융당국이 적발한 시세조종 의심사례는 계속 줄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위원회에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금융위가 시세조종 의심 사례를 적발해 고발하거나 수사기관에 통보한 건수는 2건(고발 1건·수사기관 통보 1건)에 그쳤다. 시세조종이란 정상 거래로 형성된 가격보다 주식을 더 비싸거나 싸게 매매해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20년 15건(고발 9건·수사기관 통보 6건)이었던 금융위의 시세조종 처리 건수는 2021년 12건(고발 8건·수사기관 통보 4건), 지난해 8건(고발 4건·수사기관 통보 4건)으로 매년 감소세다.

시장 감독 기능이 강화돼 과거보다 의심 사례 적발이 줄어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신종 주가조작 수법이 등장하면서, 불공정거래를 걸러내는 금융당국의 감시망이 허술해진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 만만찮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 주가조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라덕연 R&K 투자자문 대표는 수년 전부터 특정 종목의 주가를 조금씩 천천히 올리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라 대표 측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이용해, 투자자 명의 휴대전화로 주식을 대리 투자했다. 또 장외파생상품인 CFD를 활용해 투자자 정보를 감추기도 했다. 이 때문에 특정 동일 세력이 시세를 조종한다는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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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화하는 주가조작 세력을 효과적으로 엄단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 제재 절차를 좀 더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불공정거래는 거래소 심리→금융당국 조사→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심의·조치→검찰 수사→재판의 과정을 거친다. 긴급 사안은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증선위 심의를 생략하고 검찰에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건은 거래소에서 의심 사례를 통보해 금융당국이 이를 검찰에 넘기기 전까지 평균 약 11.4개월이 걸린다. 검찰 수사와 재판까지 거치면 판결 확정까지 2~3년이 소요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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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조작범의 처벌 실효성을 높이는 점도 숙제다. 특히 주가조작은 불법이익에 대한 환수 절차가 미흡해, “한탕 하고, 처벌받으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깔렸다. 실제 금융위에 따르면 금융위가 검찰에 고발·통보한 불공정거래행위 중 기소가 이뤄지지 않은 비율은 2016~2020년 55.8%에 달했다. 설사 재판을 받아도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받는 비율(2020년 기준)은 59.4%에 불과했다.

주가 조작범에게 가장 두려운 불법이익 환수는 극히 드물었다. 현행법상 과징금은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만 부과할 수 있고 3대 주요 불공정거래행위(미공개정보이용·시세조종·부정거래)에는 물릴 수 없다. 또 법상 부당이득 산정 기준도 미비해 불법이익 환수가 어려웠다. 실제 2017~2021년간 불공정거래 사건 중 과징금을 부과한 비중은 전체 4.4%에 불과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진입 규제는 느슨하게 하되, 사후 처벌은 강하게 하는 것이 선진국 방식인데 한국은 진입 규제만 강화해 놓고 정작 처벌은 약해 이런 불공정거래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며 “주가조작을 하면 패가망신할 정도로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라덕연 사건 이후 주가조작 처벌 수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3대 불공정거래 행위자에게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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