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의 기억] 완행열차에 꿈을 싣고 서울로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40호 31면

서울역 광장, 서울, 1983년, ⓒ김녕만

서울역 광장, 서울, 1983년, ⓒ김녕만

도대체 이 많은 짐을 어떻게 기차에 싣고 내렸는지, 플랫폼에서 서울역 광장까지는 어떻게 끌고 나온 걸까? 누군가를 목 빼고 기다리는 가냘픈 여인과 우악스러운 짐 보따리가 사뭇 걱정스럽다. 친정에라도 다녀오는 길일까? 푸성귀 하나라도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서울 딸네가 염려스러워 요거조거 자꾸 넣어주었을 어머니와 짐 보따리가 점점 커져도 너무나 요긴하고 필요하기에 마다하지 못했을 딸의 친정 나들이가 그려진다. 지금처럼 택배가 전국 각지를 이어주는 시절이 아니어서 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손에는 으레 짐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들의 괴력이 신기했었다. 어떻게 자기 몸보다도 큰 짐을 번쩍 들어 올려 머리에 일 수 있는지. 사실 그때는 어머니들은 다 그럴 수 있는 줄 알았다. 값싼 입석 표 끊어서 완행열차를 타고 오면서도 짐 보따리 서너 개 지참은 기본이었다. 부피가 커서 열차 선반에 올리지 못하니 별수 없이 통로를 막게 되지만 대놓고 불평하는 승객들도 없었다.

이 사진이 찍힌 1983년 서울 인구를 찾아보니 약 920만 명으로 1963년과 비교해보면 불과 20년 사이에 거의 3배 가까이 폭증했다. 10년 단위로 서울 인구가 300만 명씩 증가했으니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서울로 유입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1966년에 벌써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이호철 작가의 소설이 나오면서 이 제목이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인구 1000만 명을 향해 가는 80년대의 서울은 문자 그대로 ‘만원’이었다.

그러므로 서울역은 늘 분주했다. 기적을 울리며 도착한 기차가 토해내는 수많은 시골 사람들이 저마다 꿈을 안고 서울역에 내렸다. 그러나 별다른 기반이 없는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서울은 계속하여 블랙홀처럼 시골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가난한 농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상경을 감행하던 시절이었다.

김녕만 사진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