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신복룡의 신 영웅전

관중(管仲)의 우정과 대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학회에서 나라 장래를 걱정하던 중에 누가 우리나라의 정체(政體)를 “대통령 격노(激怒) 중심제”라 하기에 나는 한술 더 떠서 “대통령 복수(復讐) 중심제”라고 응수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대통령만 바뀌면 무슨 이유인지 지도급 인사 여남은 명이 자살하거나 의문사를 겪었다. 백 명 정도가 처벌을 받고 형량을 합치면 대략 징역 200년 정도가 된다.

육군 대장이 당번병에게 구두를 닦도록 하고 꽃밭에 물을 주게 한 것이 병사의 인권을 유린한 죄로 몰려 구속된다면 이는 사람 사는 도리가 아니다. 권력을 잡아 이미 승자가 됐으면 가슴이 넓어야 하는데, 한국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일신의 호강과 복수에 중요한 가치를 뒀다.

신 영웅전

신 영웅전

국가의 장래는 아내가 전용기 타고 가고 싶어 하는 유적지 방문보다 뒷전에 밀렸고, 민생은 자기가 기르던 개의 사룟값만 못했으며, 나라는 퇴임 뒤에 살 집터 마련만 한 가치도 없었다. 왜 그렇게들 사는지.

중국 춘추전국 시대 제(齊)나라 재상 관중(管仲)의 운명이 가까워졌다는 말을 듣고 환공(桓公)이 그를 찾아가 “경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누가 그 자리를 이을 만합니까”라고 물었다. 관중이 환공의 뜻을 되물으니 환공이 “포숙(鮑叔)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그 말에 관중은 “그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토록 절친해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미담을 낳은 포숙을 관중이 거절하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남의 허물을 평생 기억하기(人之過 終身不忘)에 재상 재목이 아닙니다.”(『열자(列子)』 역명편(力命篇))

정년퇴직하며 연구실을 비우면서도 이렇게 버려야 할 것이 많은데, 일생을 마칠 때 나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버려야 하나.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원한이다. 그것을 가슴에 껴안고 살다 보면 내가 다친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