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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다시 찾아올 벌들을 위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5월 초 가로수 길엔 이팝나무 흰꽃이 장관을 이루고 앞산 뒷산엔 아카시나무 꽃이 포도송이처럼 열렸다. 그 향기가 바람에 날려온다. 우리 집에선 네 장의 잎이 하얗게 꽃잎처럼 피어나는 산딸나무가 드디어 꽃을 피우는 중이다. 마치 손수건을 매단 듯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의 꽃들이 잊지 않고 피어나니 정말 고맙고 신기하다.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얘기를 끝맺어야 하는데 올해는 아니다. 좀 이상하고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무섭다. 벌들이 너무 안 보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벌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듣기 시작한 지도 수년이 흘렀다. 그래도 어찌 되겠지라는 마음에 걱정을 미뤘는데 올해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작년만 해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윙윙거리는 벌들이 자연스럽게 잡혔는데 올해는 정말 거짓말처럼 안 보인다. 벌들의 실종에는 몇 가지 원인이 꼽힌다. 가장 유력한 것은 살충제 과다 사용이다. 또 휴대전화 전자파가 벌들의 회귀본능에 이상을 일으키고, 양봉으로 벌들에게 설탕물을 주는 행위도 스스로 꽃을 찾아가는 벌들의 본능을 약화하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이 모든 원인이 한결같이 다 우리 탓이라는 점에서 진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벌은 식물의 수분을 돕는 가장 큰 그룹의 생명체다. 이 생명체가 사라지면 곧 식물들의 3분의 2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면 우리 미래도 장담하기 힘들다. 우리 곁에 벌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려면 지나친 살충제 사용부터 줄여야 한다. 정원에 식물을 많이 심는 것도 좋다. 같은 종류를 많이 심기보다 소량 다품종으로 골고루 심어야 각양각색 꽃이 피어나 벌들에게 식량이 돼 준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물이다. 정원 한쪽에 물을 담아두어 벌들이 쉬어가며 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면 큰 도움이 된다.

다시 돌아올 벌들을 위해, 우리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정말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