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닮은 삼둥이 850명 모였다…그들 줄서게 한 '영웅'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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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관 서울대 의대 교수(왼쪽 셋째)를 만나 쌍둥이 아들을 무사히 출산한 강희진씨 가족이 13일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전 교수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오늘 이곳에 쌍둥이 친구들이 많이 모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나요?”

사회자의 물음에 “네!”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하나같이 형제·자매가 똑 닮은 얼굴로,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온 ‘다둥이’들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뽀로로와 친구들의 율동에 아이들이 흥에 겨워 들썩들썩 춤을 췄다.

지난 13일 오후 찾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운동장엔 어린이 수백 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다태아(다둥이) 분만 전문가인 전종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가 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 행사에서다. 전 교수는 그동안 직접 받아낸 아이들과 그 가족을 초대했다. 아이들만 850여 명, 가족들까지 18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전 교수는 세계에서 세쌍둥이 분만을 가장 많이 집도한 의사다. 2021년 다섯 쌍둥이를 출산한 서혜정 대위의 분만 수술 집도의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전 교수는 이날 행사를 연 이유에 대해 “다 같이 얼굴도 보고 모여서 노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 교수의 초대를 받은 1800여 명 다둥이 가족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여 뽀로로 공연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정현 기자

이날 모인 아이들에겐 뽀로로가 스타였지만, 엄마·아빠들에겐 전 교수야말로 ‘영웅’이었다. 전 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부모들이 만든 줄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날 모인 다둥이 가족들은 전 교수가 2016년부터 다태아 출산 산모를 추적 관찰하는 ‘코호트(동일집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설문지를 꼬박꼬박 보내는 것도 전 교수를 향한 특별한 마음 때문이다.

이날 모인 가족들은 다른 병원에서 “다태아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 마지막으로 전 교수를 찾았다는 이들이 많았다. 여섯 살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강희진(39)씨는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임신해 불안한 상태가 이어졌다. 결국 임신 23주 차에 양수가 터졌고, 친정이 있던 경상도 내 한 병원에서 “24시간 안에 둘 다 꺼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그 병원에는 인큐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었다. 기적처럼 서울대병원의 신생아중환자실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서울로 달려갔고, 전 교수를 만나게 됐다.

전 교수는 “이미 첫째의 발이 자궁 경부 밖으로 빠져나와 둘째 애라도 엄마 배 속에서 오래 두자는 생각으로 수술장에 들어갔다”고 떠올렸다. 그런데 전 교수가 아이 발을 잡으려 하자 엄마 배 속으로 쏙 들어갔다고 한다. 전 교수는 자궁 경부를 꿰매고 28주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전 교수의 정성과 엄마의 의지로 아이들은 엄마 배 속에서 5주 더 자랐고, 강씨는 첫째 0.89㎏, 둘째 1.29㎏으로 무사히 출산에 성공했다. 첫째는 네 살이 돼서야 걷고, 골연화증이 남아 있지만 거의 회복됐다. 둘째는 큰 탈 없이 건강하다. 강씨는 “전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 애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세쌍둥이 중 한 명을 410g으로 낳은 엄마도 오늘 와 있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도 다른 병원에선 포기하자고 했지만, 부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 교수를 찾았다. 전 교수는 “410g이면 생수병보다 작다. 그런 애가 건강하게 커서 걸어 다니니까 얼마나 신기하냐”며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이 아이가 된다, 안 된다’를 먼저 판단하면 안 됩니다. 아이한테 세상에 나올 기회를 줘야죠.”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