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훈 칼럼

“중국과 디커플링 아니다” 설리번이 한·중 관계에 준 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주필

최훈 주필

47세 젊은 백인의 입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의 말 따라 지구촌의 불안과 안도가 교차한다. 44세의 역대 최연소로 바이든 백악관의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된 제이크 설리번. 요동치는 새 국제질서의 설계자다. 한·미 동맹의 강화 속 껄끄러워진 한·중 관계의 대응 역시 그를 이해하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최근 설리번은 ‘미국의 새 경제적 리더십’이란 브루킹스연구소 특강(4월 27일)을 통해 중국에 대한 접근의 관점을 분명히 했다. 결론부터 보자.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아니다. 교역의 규제는 (중국과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려 미국 안보에 해가 될 기술의 좁은 영역에만 국한될 것이다. 기술의 봉쇄(technology blockade)가 아니다. 미국을 군사적으로 겨냥해 도전하는 소수, 극히 세부적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것이다.”

“대중 교역 자체 금지 아니다” 강조
지난해 미·중 교역·투자 역대 최고
한국도 제로섬·이분법의 접근 말고
“중국과의 윈윈 관계 지속” 강조를

이 바이든의 브레인은 “미국과 중국은 충분한 교역·투자 관계를 유지 중이며 지난해 양국 교역은 역대 최고였다”고 소개했다. 실제 2022년 미·중 교역액은 6906억 달러(약 870조원, 블룸버그)로 기존 최대였던 2018년의 6615억 달러를 뛰어넘었다. 전년에 비해서도 5.0% 증가. 미국으로선 그 전해보다 8.3% 늘어난 3829억 달러(483조원)의 역대 두번째 큰 적자도 감수했다. 과연 ‘Made in China’ 없이 물가 관리 등 미국과 세계경제가 돌아갈 수 있을는지를 보여준 현실일 수도 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과의 분리, 탈동조(decoupling)를 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중국 공급망 의존에 대한) 위험 해소(derisking)와 다변화(diversification)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중 관계를 ‘제로섬’ ‘이분법’으로 바라다 본 ‘디커플링’ ‘제2의 냉전’ 구도를 거부한 셈이다.

“경쟁을 서로 책임감있게 관리하고, 가능한 지점에선 중국과의 협력을 추구하겠다”고 설리번은 덧붙였다. 협력의 대상으론 기후변화, 거시경제의 안정성, 인류의 보건, 식량의 안전 등을 꼽았다. “모든 영역에서의 전방위 대중 전면전이 미국, 특히 미국 중산층의 이익에도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 특강 이전 ‘설리번의 새 국제 설계도’는 2020년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펴낸 ‘미국의 중산층에 더욱 도움될 대외정책’ 보고서에서도 윤곽을 드러냈었다. 현 국무부의 정책기획국장으로 발탁된 살만 아메드와 설리번이 공저자로 참여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정책 바이블이다. 이 보고서의 핵심 논리 역시 “중국은 안보의 위협, 경제적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글로벌 파트너”다. 논리가 이랬다. “세계 인구의 96%가 미국 밖에 있다. 광대한 해외 시장은 우리 기업엔 상품·서비스를 팔 기회다. 어떤 영역에선 강경한 입장이 필요하겠지만 중국과는 상호이익이 될 건설적 접근을 할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계경제 양대 축 간의 무한 대치와 충동적 확전이라면 미국민의 우려를 증폭시켜 투자가 움츠러들고, 일자리를 줄게 해 미국의 중산층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중 경쟁 속에서 ‘줄서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유럽과 일본·한국 등의 동맹들에 47세 보좌관의 현실적 인식도 주목할 만하다. 브루킹스 특강에서 그는 “미국 내의 제조업 역량 복원과 건설이 최우선이지만, 자립국가(autarky)가 미국의 목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 다음 단계는 우리의 동맹·협력국 모두의 제조업 역량, (경제·안보 위기의) 회복 능력 등을 함께 증진시켜 그들을 결코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카네기재단 보고서 역시 “냉전 시기 소련에 비해 중국은 미국의 협력국들에 대한 경제적 레버리지가 훨씬 더 크다”며 “모든 영역의 대중 전선으로 국가들을 미국 편에 줄세우기는 어려우니 미·중의 경제적 경쟁에서만은 보다 명백한 준거를 제시해 주길 선호할 것”이란 인식도 드러냈었다. “동맹을 무임승차자라 조롱·방기하며 관세 남발로 자유무역을 역행한 트럼프식 ‘미국 우선(America First)’은 미래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중·러와의 전면적·소모적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게 하면서 그들과의 전략적 경쟁을 동맹들과 함께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트럼프 이후의 세계’, 포린어페어스 2018년 5월)는 게 설리번 자신의 일관된 메시지였다.

이는 한국의 향후 중국 외교에도 도움될 ‘설리번의 팁’이기도 하겠다. 거칠고 험한 자기암시적 얘기를 먼저 꺼내 감정 자극→자국 내 여론 악화→경제 보복→대치, 봉쇄로 갈 악순환은 피해야 하겠다. 중국을 잘 설득해 선순환 구도를 만들 최선의 메시지. 이 정도가 어떨까 싶다.

“중국은 우리에겐 늘 기회였다. 양국의 자유 교역·투자는 모두의 경제와 두나라 중산층의 이익에도 윈윈이자 지속돼야 할 핵심 기둥이다. 이웃의 협력 지점 역시 기후변화·보건·환경으로 한층 넓어져야 할 시간이다. 미국의 안보 동맹이라 해서 결코 중국을 디커플링·봉쇄하려는 게 아니다. 모두의 기회와 이익을 키울 건설적 외교의 공간을 넓혀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