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곳에 쌍둥이 친구들이 많이 모였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맞나요?”
사회자의 물음에 “네!”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하나같이 형제ㆍ자매끼리 똑 닮은 얼굴로 , 같은 옷을 맞춰 입고 온 ‘다둥이’들이었다. 곧이어 등장한 뽀로로와 친구들의 율동에 아이들이 흥을 주체 못 하고 들썩들썩 춤을 췄다.
지난 13일 오후 찾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운동장엔 어린이 수 백 여명이 뛰어놀고 있었다. 국내 최고의 다태아(다둥이) 분만 전문가인 전종관 교수가 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 행사가 열렸기 때문이다. 전 교수가 그간 받아낸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했다. 아이들만 850여명, 가족들까지 18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뽀로로 공연과 종이비행기 날리기, 풍선 불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고, 엄마·아빠 손을 잡은 다둥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
전 교수는 세계에서 세 쌍둥이 분만을 가장 많이 집도한 의사다. 2021년 다섯 쌍둥이를 출산한 서혜정 대위의 분만 수술 집도의로 널리 알려져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전 교수는 이날 행사를 연 이유에 대해 “다 같이 얼굴도 보고 모여서 노는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 교수의 초대를 받고 이날 전국에서 모인 다둥이 가족들에겐 특징이 있다. 전 교수가 진행하고 있는 ‘코호트(동일집단) 연구’에 참여하고 있단 점이다. 전 교수는 2016년부터 다태아 출산 산모들을 추적 관찰하고 있다. 2~6개월 간격을 두고 아이가 몸이 안 좋은 곳은 없는지, 키·체중·머리 둘레는 어떻게 되는지 꼼꼼하게 묻는 설문지를 보낸다. 전체 등록된 산모는 2000명 정도인데 이 중 220명 정도는 5년간 추적관찰을 마쳤다. 아직 5년이 안 된 1200여명은 꾸준히 설문지를 작성해 보내주고 있다. 이 연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 교수는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같고, 같은 집에서 자라는 한 환경도 같다. 그런데 자라면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인다거나, 한 명만 어떤 질병에 걸린다거나 이런 점들을 연구할 때 (코호트 연구 결과가) 굉장히 중요한 소스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모인 아이들에게 뽀로로가 스타였지만, 엄마·아빠들에겐 전 교수야말로 스타였다. 전 교수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이들이 만든 줄이 1시간여 이어졌다. 부모들이 육아와 직장일로 바쁜 와중에도 설문지를 꼬박꼬박 채워 보내는 것도 전 교수를 향한 특별한 마음 때문이다. 전 교수 역시 아이들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대했다. 뙤약볕 아래 아이를 안아 올리거나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춰 가며 줄을 선 이들 모두와 사진을 찍었다. 화장실에 줄 선 가족들에게 “저쪽 간이 화장실이 손도 씻을 수 있고 더 쾌적하다”고 알려주며 아버지처럼 챙기도 했다.
다둥이 산모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의사
환자 보호자와 의사 간의 관계가 왜 이렇게 애틋한걸까. 이날 모인 가족들에게 물었더니 다른 병원에서 “(다태아 중에서)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 마지막으로 전 교수를 찾았다는 이들이 많았다. 6살 쌍둥이 아들 건영과 도영을 키우는 강희진(39)씨도 그렇다. 강씨는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임신했으나 8주차부터 하혈이 계속되는 등 불안한 상태가 이어졌다. 임신 23주, 6개월 차에 건영이를 감싸고 있던 양수가 터졌다. 친정이 있던 경상도의 한 병원에서 "24시간 안에 둘 다 꺼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긴급 수술을 준비하던 중 병원 측에서 "인큐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다"며 다른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이때 기적같이 서울대병원의 NICU(신생아중환자실)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서울로 달렸고, 강씨는 전 교수를 만나게 됐다. 강씨는 “교수님이 콧노래를 부르면서 와서 '양수가 왜 터져서 왔지? 엄마 한번 볼까?' 말하는걸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전 교수가 봤을 때 이미 건영이의 발이 엄마의 자궁 경부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전 교수는 “발이 나온 아이는 포기하고 둘째 애라도 엄마 뱃속에서 오래 두자는 생각으로 수술장에 들어갔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전 교수가 잡으려 하자 아이 발이 쏙 들어갔다고 한다. 전 교수는 “아이가 들어갔는데 쫓아가서 잡아 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신 자궁 경부를 꿰매고 28주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강씨는 “배가 찢어지게 아프고 매일 6~7시간은 그냥 눈 감고 누운 채 버티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저녁에 교수님이 와서 “‘엄마 오늘 괜찮지? 하루만 더 참자’ 하시면 그렇게 하루 더 버텨냈다”고 했다.
전 교수의 정성과 엄마의 의지로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5주 더 자랄 수 있었다. 형 건영이 0.89㎏, 동생 도영이 1.29㎏였다. 건영은 네 살이 돼서야 걷고 골연화증이 있지만 거의 회복됐다. 도영은 큰 탈 없이 건강하다. 일상을 찾은 가족은 “교수님 아니었으면 우리 애들은 못 걸어 다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세쌍둥이 중 한 명을 410g으로 낳은 엄마도 오늘 와 있다”고 했다. 이 아이들도 다른 병원에선 포기하자고 해 전 교수를 찾았다. 전 교수는 “410g이면 생수병보다 작다. 그런 애가 건강하게 커서 걸어 다니니까 얼마나 신기하냐”며 온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이 아이가 된다 안 된다'를 의사가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한테 기회를 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