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을 ATM처럼 썼다…1년 가두고 때려 146억 뜯은 조폭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땐 제 인생이 이렇게까지 파괴될 줄 몰랐습니다. 한 번 때리기 시작하면 짧게는 수십 분, 길게는 하루종일 폭행이 이어졌고, 가족들은 생명을 위협당했습니다. 지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 저 대신 죽도록 맞았습니다. 제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빚 지고 도망친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A씨로 인해 벌어진 일들입니다.” (피해자 B씨)

코인투자 수익을 내놓으라며 1년 넘게 피해자들을 감금·폭행·협박하고 146억원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코인 단기매매 투자를 빙자해 서울 논현동 소재 중소 IT업체 대표 B씨(37)와 직원 등 피해자들을 괴롭힌 주범 A씨(36)와 수원○○파, 청주△△파 조직폭력배 2명 등 16명을 붙잡아 지난 2월부터 이달까지 검찰에 송치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에겐 상습공갈·특수중감금·특수상해 등 10개 혐의가 적용됐다.

주범 A씨와 피해자 B씨는 2020년 말 코로나19 마스크 제조·유통 사업을 계기로 알게 됐다. 동년배였던 두 사람은 사업적으로 친해졌지만, 마스크 장사가 끝물임을 직감한 B씨가 2억원 상당을 코인에 투자하는 것을 목격한 뒤로 A씨는 돌변했다. “원금 3500만원을 줄 테니 투자금의 30% 수익률을 수주 간격으로 입금하라”는 요구와 함께 잔혹한 폭행이 시작됐다. 협박은 B씨의 아내와 어머니 등 가족에게도 이어졌다. “(아내의) 가족에게 염산을 뿌리겠다” “아들을 숨겨주지 말라”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어머니 집을 담보로 한 대출과 20억원 상당의 허위 차용증 작성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주범 김모(36)씨가 피해자들을 시켜 갈취한 돈으로 5만원권 하트를 만들고 이를 다른 피의자에게 선물하기 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주범 김모(36)씨가 피해자들을 시켜 갈취한 돈으로 5만원권 하트를 만들고 이를 다른 피의자에게 선물하기 전 찍은 기념사진. 사진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회사까지 차려 ATM 취급…직원 중엔 조폭도

A씨는 급기야 B씨 회사가 있는 건물에 자신의 회사를 차려 B씨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경영 컨설팅 등 명목으로 세워진 A씨의 페이퍼컴퍼니엔 수행비서, 자금관리 이사, 홍보직 등이 채용됐다. 월급은 B씨 회사에서 갈취한 돈으로 지급됐다. 사무실에선 1년여에 걸쳐 상습 폭행이 이뤄졌다. 직원들은 수시로 B씨를 감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직원 중엔 A씨가 구치소에서 알게 된 조폭들도 있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B씨가 2021년 크리스마스 이브 탈출을 감행하자, A씨는 B씨의 휴대전화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번호로 ‘피해자가 150억원을 들고 도망쳤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B씨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머무는 곳을 알아내거나, B씨 대신 지인 2명을 납치해 13시간 동안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한 뒤 폐쇄회로(CC)TV를 떼는 등 증거인멸교사도 일삼았다.

지난해 2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피의자들이 피해자들을 둔기로 폭행하는 모습. 사진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지난해 2월 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피의자들이 피해자들을 둔기로 폭행하는 모습. 사진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피해자들은 경찰도 소용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지난해 2월 4일 보복성 특수주거침입을 시도했다가 현장 체포돼 강남경찰서에 유치된 적이 있었다. B씨는 “당시 경찰에 1년간 벌어졌던 모든 폭행·감금·공갈 사실을 진술했지만, 3일간 담당팀이 3번이나 바뀌더니 결국 김씨는 구속 없이 풀려났다”며 “김씨 일당이 평소 경찰 고위직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곤 했다. 김씨 자신은 법대를 나와 (법조계 등에) 끈이 많아 절대 붙잡히지 않을 것이며, 경찰은 무섭지 않다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이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는 주범 일당이 CCTV를 은폐해 범죄 혐의 증명이 부족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경찰 브리핑에 참석한 B씨를 비롯한 3명의 피해자들은 “A씨 일당은 ‘다 너희 좋으라고 하는 일’이란 말도 안되는 발언으로 우리를 지속적으로 압박했다”며 “2차 피해와 3차 피해가 너무 두렵다. 검찰과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호소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