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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갤3’의 흥행, 너구리를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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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수퍼 히어로 명가’라는 타이틀이 위태롭던 할리우드 제작사 마블이 신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3편의 흥행을 터뜨리며 자존심을 세웠다. 재미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2014년 1편부터 우주를 누빈 괴짜 주인공들 중에서도 너구리 전사 ‘로켓’의 사연을 밝힌 이야기가 모처럼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 영화가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동물 캐릭터에 중심자리를 내줬다는 점이다. 동물 실험의 잔혹함을 낱낱이 고발까지 했다. 봉준호 감독의 생태주의 영화 ‘옥자’(2017)에 빗댄 외신평이 나왔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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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험실 동물을 일련번호로 분류하고 구속장치에 묶어 해체하는 풍경은 실제 동물실험 현장과 빼닮았다. 국제동물권단체 ‘페타(PETA)’는 지난 8일 이 영화에 ‘올해 최고 동물권 걸작’이란 칭찬과 함께 상까지 수여했다. 말하자면, 역대 어떤 마블 작품보다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에 입각한 영화라는 것이다. 최근 마블뿐 아니라 모회사 디즈니 영화들을 “망쳤다”고 원성을 사온 바로 그 ‘PC주의’ 말이다.

‘가오갤3’에 대해 그 같은 비판이 나오지 않는 건 주제 의식과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어울려서다. 1편부터 9년간 친숙히 봐온 로켓의 가슴 아픈 사연은 어떤 인간 마블 히어로도 갖지 못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제임스 건 감독은 이번 3편의 이야기를 2014년부터 구상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질이 떨어지는 건 덜 익은 시나리오”라고 꼬집었던 그가 내리막길 마블에서 자신의 영화를 구해낸 비결이다. 결국 마블을 망친 건 PC가 아니라 부실한 시나리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