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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꿀벌 실종' 재앙 현실화…"벌통에 100억 썼다" 농가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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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15만원 하던 벌통 한 개를 수소문 끝에 30만원이나 주고 샀습니다. 내년에는 얼마까지 오를지 벌써 걱정입니다.”

기획/현실화 하는 꿀벌 멸종 나비효과(상)

지난 1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참외원예농협 공판장. 농민 김석주(65)씨는 “올해 참외 작황은 좋았는데 참외값이 떨어지고 생산비는 치솟아 손해를 볼 판”이라고 했다. 그는 “가뜩이나 농자재나 비료 가격이 비싼데 올해는 수정용 벌값까지 크게 올랐다”며 “올해 초 참외하우스 15동에 꿀통을 들여놓는 데만 45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지난 1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참외원예농협 공판장에 경매를 앞둔 참외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다. 국내 최대 참외산지인 성주에서는 참외하우스가 5만여동 중 80%(4만여동) 가량이 꿀벌을 이용한 수분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일 오전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참외원예농협 공판장에 경매를 앞둔 참외 박스들이 가득 쌓여 있다. 국내 최대 참외산지인 성주에서는 참외하우스가 5만여동 중 80%(4만여동) 가량이 꿀벌을 이용한 수분을 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작년 60억마리서 올핸 200억마리 폐사

지난해부터 시작된 꿀벌 실종사태 여파가 농가와 산업계로 번지고 있다. 최근 2년간 전국에서 꿀벌이 급감하면서 양봉농가에 이어 과수농가나 종묘업계 등까지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꿀벌은 농작물과 식물 수분(受粉·꽃가루받이) 역할을 하는 곤충이다. 꿀벌이 꽃을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옮겨줘야 열매가 맺힌다.

8일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국 농가 1만8826곳, 122만4000개 벌통에서 꿀벌이 없어졌다. 벌통 1개당 평균 1만5000~2만마리가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당 1만7000마리씩만 잡아도 208억마리가 자취를 감추거나 폐사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국 꿀벌 56% 증발…“내년 더 큰 피해”

양봉협회 측은 올해 양봉 농가에서 키우던 꿀벌 중 56.3%가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 39만517개 벌통에서 60억마리가 없어진 지난해보다 3배 이상 피해 규모가 커졌다. 양봉업계나 과수농가 등에선 “내년엔 더 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별로는 경북지역 벌통 25만7339개를 비롯해 경남(25만4187개), 전남(16만379개)에서 큰 피해를 봤다. 경기(13만8780개), 충남(13만7700개), 충북(12만852개) 등에서도 50~75%가량 꿀벌이 사라졌다. 양봉업계는 피해 금액이 지난해 1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천억원이 될 것으로 본다.

박승표(71) 한국양봉협회 경북도지회 사무국장은 “꿀벌이 계속 폐사하면서 판매용 꿀벌은 물론이고 과수 농과에 빌려줄 임대용 벌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이번 피해 조사에는 올해 봄에 돈을 주고 새로 산 벌통도 포함된 만큼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과수농가·종묘회사까지 ‘불똥’

꿀벌 폐사 여파가 과수농가와 산업계로 확산하는 점도 문제다. 국내 최대 참외 산지인 성주군 농가는 벌통을 사기 위해 예년보다 배가량 돈을 더 쓴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성주에 있는 참외하우스가 5만여동 중 80%(4만여동)가량이 꿀벌을 이용한 수분을 하고 있다. 성주군과 성주군농업기술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벌통가격이 25만~30만원에 거래됐다는 점에서 전체 농가를 합치면 100억원 이상 꿀벌을 사거나 임대한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참외 가격은 매년 내려가고 있다. 성주참외원예농협에 따르면 지난 1일 10㎏짜리 특품 참외 평균 경매가는 3만5000원으로 2년 전 같은 기간(5만3000원)보다 33.9%(1만8000원) 떨어졌다.

한민(47) 성주참외원예농협 경매사는 “평균 5만원을 웃돌던 참외가격이 지난해 4만원 아래로 하락하더니 올해는 3만원대 중반까지 떨어졌다”며 “농가 입장에선 기존 생산비에다 벌통 구매 비용이 배가량 증가한 것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서산리 양봉농가에서 이인구(60)씨가 지난 1~2월 꿀벌이 사라진 벌통을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딸기농가 등 꿀통값 상승에 기형과까지

꿀벌 품귀 현상은 전남 강진군과 충남 논산군 딸기농장 등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 강진 딸기농장은 올해 초 수분용 꿀벌이 없어 열매가 기형적으로 맺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농가에선 꿀벌 대신 외래종인 호박벌까지 수입해 하우스에 풀어놓는 실정이다.

꿀벌 활동성이 과거보다 많이 떨어진 점도 고민거리다. 전년도 11월부터 4월까지 활발한 수정 활동을 했던 꿀벌이 지난해부터는 3월까지도 못 버틸 정도로 힘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일부 딸기농가는 “비닐하우스 한 개에 벌통 하나면 충분했던 딸기 수정이 올해는 두 통을 넣고도 수정이 잘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강진군에서 딸기하우스를 하는 이성수(59)씨는 “딸기는 저온성 작물이어서 3월부터는 상품성이 떨어지고 기형과(果)도 생기는 탓에 올해 초 수분용 꿀벌을 대느라 애를 먹었다”며 “호박벌은 수분 역할을 해주긴 하지만 하우스에서 자라난 딸기를 파먹곤 해 꿀벌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딸기농장에서 꿀벌이 꽃들을 옮겨다니며 수분(受粉)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딸기농장에서 꿀벌이 꽃들을 옮겨다니며 수분(受粉) 활동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종묘업계 “종자 생산 줄면 씨앗값도 올라”

꿀벌 개체 수가 급감하자 종묘회사도 농작물 종자를 확보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수정용 벌통값이 배가량 오른 데다 무나 배추 등 씨앗 생산량이 눈에 띄게 줄어서다.

아시아종묘㈜ 남윤수(61) 기술상무는 “통상 무나 배추 종자는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대부분 생산한다는 점에서 벌이 없으면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당장 수정용 벌통값이 오른 것도 문제지만 꿀벌 급감에 따른 수확이 계속 감소하면 씨앗 값 상승이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딸기농가에서 이성수씨가 올해 꿀벌 폐사와 딸기 작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달 26일 오후 전남 강진군 딸기농가에서 이성수씨가 올해 꿀벌 폐사와 딸기 작황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밀원수 식재, 양봉산업 진화해야”

정부와 전문가들은 꿀벌 집단 폐사가 온난화와 병해충 피해, 약제 오용, 봉군 관리기술 부족 등이 두루 맞물린 결과로 본다. 이에 따라 밀원수(蜜源樹) 식재와 양봉산업 고도화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조윤상(54) 농림축산검역본부 꿀벌질병관리센터 수의연구관은 “추가적인 꿀벌 집단 폐사를 막기 위해선 정부와 양봉 농가가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대대적인 밀원수 식재와 응애 구제를 위한 약재 순환사용, 신약개발, 체계적인 사양꿀 관리 등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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