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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명 몰려간 '소아과 탈출' 수업…의사들 간판 뗄 결심, 왜

중앙일보

입력

“이제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9년째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운영하는 원장 A씨의 말이다. ‘접는다’는 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서의 경력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는 피부·미용 쪽에서 새롭게 의사 일을 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다음 달 11일 열리는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에 참가 신청을 해뒀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 ‘재수종합반’에 몰린 이유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3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행사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주관한다. 자신들이 담당하는 소아청소년과를 ‘탈출’한다는 학술대회에 A 원장처럼 참가하겠다는 회원이 521명(4일 기준)이나 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왜 소청과 진료 포기를 고려하게 됐을까.

이번 학술 대회에선 미용ㆍ비만ㆍ하지정맥류ㆍ천식 진단ㆍ당뇨 등 성인 대상 진료들의 특성을 전반적으로 소개한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 의사회장은 “일종의 재수 종합반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 각 분야의 기초를 강의해주고 거기서 ‘나는 미용이다’, ‘나는 통증이다’라는 식으로 적성을 고민해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의사회에선 이후에 희망하는 분야별로 세분된 트레이닝 센터도 운영할 방침이다.

이 학술대회는 지난 3월 29일 의사회에서 “더는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보지 않겠다”며 ‘폐과 기자회견’을 연 것에 이어지는 조치다. 당시 의사회는 “저출산이 길어지며 소아청소년의 숫자가 감소하는데 수가는 낮고, 보호자들의 폭언과 폭행, 무고한 소송 등을 견디며 소아청소년 전문의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코로나19로 ‘박리다매’식 소아과 진료 한계 상황 

A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성인들이 주로 가는 내과는 내시경 같은 검사나 다른 수가가 높은 치료라도 할 수 있지만, 소아청소년과는 (수가가 낮은) 진료만 한다. 또 어른들은 증상에 따라 이비인후과도 가고, 피부과도 갈 수 있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들어왔다가도 ‘머리에 뭐가 났는데 이것도 좀 봐달라’고 하면 그걸 다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명을 보는 진료 시간은 긴데 수가가 낮으니 하루에 백몇십명을 진료해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보호자들이 점점 더 까다롭고 예민해지는 것 역시 진료 보는 환경을 힘들게 한다”고도 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아이들이 병원에 잘 안 가게 되면서 소아청소년과의 ‘박리다매’식 진료는 한계에 부닥쳤다는 게 의사들의 토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2021년에 소청과 병ㆍ의원 78곳이 문을 닫았다.

환자들의 소아과 ‘오픈 런’ 심해질듯 

‘소청과 탈출 학술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500여명 중 몇 명이 병원 간판을 내릴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임 회장은 “(폐과) 적극 관심층이라고 보면 된다”고 단언했다. 수백 명 소청과 전문의가 일반 진료로 방향을 튼다면, 아침부터 병원 앞에 줄을 서고 대기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현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우려다.

복지부에선 이런 상황을 개선하고자 지난 2월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신생아 입원 수가를 50% 늘리고 공공전문센터에는 시범적으로 적자 보상도 해준다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이에 대해 A 원장은 “정부가 근본적으로 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시기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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