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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노조 간부하겠다”…尹 소신 뒤집은 18년 전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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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윤석열 대통령을 아는 주변 인사는 “그는 학창시절부터 노조를 약자로 여겼다”고 기억한다. “기업으로부터 탄압받는 대상”이란 것이다. 특수부 검사로 재벌 비리를 많이 수사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고 한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3대 개혁과제 중에서도 1순위로 노동개혁에 매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선배인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의 생각 저변에 흐르는 기조는 약자 보호다. 학교 때부터 그랬고, 검찰총장 시절까지 이어져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쿠데타 세력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 5월 8일 서울대 모의재판에서 판사를 맡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석 달간 강릉 외가로 피신하기도 했다.

그런 윤 대통령의 생각이 결정적으로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18년 전인 2005년 광주지검 특수부 부부장 검사 시절 불거진 기아자동차 노조 채용비리다. 당시 이기배 광주지검장이 직접 지휘할 정도로 노조 채용비리가 드러난 첫 대형 사건이었다. 권력화된 노조의 힘이 국민 앞에 공개된 사건이기도 했다.

2005년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개요

2005년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개요

검찰의 당시 수사 발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2명의 노조 간부 등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입사한 사람은 120명이다. 이들이 제공한 돈은 총 24억37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2000만원이다. 노조 간부 1인당 입사 추천 대가로 취득한 돈은 1인당 평균 1억3500만원이다.” 당시 광주의 전용면적 84㎡ 아파트 한 채가 1억2000만원 정도였다. 노조 간부마다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하고도 남았던 셈이다. 기아차가 끝이 아니었다. 한 달여 뒤 울산 현대자동차에서도 노조 채용비리가 불거지는 등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광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수사전담반장을 맡았던 이광형 변호사는 “당시 기아차는 외환위기로 현대가 인수(1998년)한 뒤 경영진이 물갈이되고 주인이 없는 듯했다. 회사 경영진과 노조가 짜고 회사를 운영하는 인상이었다. 노조가 주인 행세를 했다”고 말했다.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당시 ‘예상 질의·응답서’에도 이렇게 나온다. “회사가 노조의 취업장사를 알면서도 묵인·방조했다. 노사관계 안정 등을 위해 회사가 노조 집행부와 각 계파 등의 추천권 행사를 허용했다. 일부 노조 대의원은 향후 (노조) 선거를 대비해 자금을 보관해 온 사례가 발견됐다.”

윤 대통령은 최근 당시를 회고하며 몇몇 사람에게 “노조사무실이 검찰청보다 더 좋았다. 정규직은 편안하게 버튼만 누르고, 어려운 일은 하청노동자 차지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소신대로 수사하라고 격려했다”고 말했다.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기아차 노조 채용비리

이광형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휘라인에 있진 않았지만 여러 가지로 수사에 참여했는데, 그 당시 ‘엄청 놀랐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노조 간부의 도를 넘는 일탈도 드러났다. 노조 간부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거의 매일 룸살롱에서 술을 마셨다. 오죽하면 당시 광주에선 ‘국회의원 할래, 노조 간부 될래’라고 물으면 열이면 열 명 모두 노조 간부 한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고도 했다.

이 변호사는 “나도 그렇지만 윤 대통령도 기아차 채용비리 수사를 하면서 노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재벌 비리와 함께 노조에 대해서도 비리 척결 의지를 다진 것으로 알고 있다. 노조가 국가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고, 그게 지금의 노동개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동개혁은 기득권 노조에 의한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고, 공고한 기득권 노조에 밀려 수십 년 동안 바꾸지 못해 글로벌 시장과 동떨어진 각종 사안을 지속해서 고쳐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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